친구 아니면 적?

[ 기독교교육이야기 ] 멘토가 멘티에게-10대를 향한 조언 <5>

  

김성중 교수

2017년 11월 14일(화) 13:35

 

청소년 시기에는 친구관계에 있어서 이중성이 생긴다. 즉, 나와 마음이 맞는 친구는 내 편으로 여기지만, 나의 마음에 들지 않는 친구는 적으로 여기는 것이다. 그래서 청소년 시기에 왕따 문제가 심각하게 나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중성의 모습을 보이는 청소년에게 무엇이라 말씀하실까?

 

필자는 고등학교 때 찬양인도자로 활동했다. 찬양인도자라고 함은 예배의 중요한 부분을 맡은 사람으로서 경건해야 하고, 하나님께 집중해야 하는 위치이다. 어느 주일 예배를 앞두고 있던 시간에 내 마음에 맞지 않는 드럼 치는 학생에게 화를 이기지 못하고 말다툼을 하였다.

예배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고, 성질은 나서 마음은 흥분되었다. 그러다가 교회 화장실에 갔다. 성질이 나서 세수라도 할 참이었다. 세수하고 물을 닦으려고 수건을 찾는 순간 화장실에 붙어 있던 성경구절을 발견했다.

그 성경구절은 바로 마태복음 5장 23~24절의 말씀이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그 구절을 읽고, 회개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드럼 치는 친구와 화해하고, 화해한 기쁨 속에서 찬양인도를 할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종교행위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이 바로 화목이다. 마태복음 5장 23~24절에서 예물 드리는 것은 종교행위의 대명사로서 쓰인 것이다. 그러니까 예물 드리는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께 찬양하고, 하나님의 말씀 듣는 것 모두에 적용될 수 있다.

기도하고, 찬양하고, 말씀 듣고, 예물 드리는 것은 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일이다. 그런데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을 한 것은 형제를 슬프게, 형제를 힘들게 하는 일이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전에 형제를 힘들게 하거나 슬프게 하고 기분 나쁘게 했다면, 우선적으로 형제에게 가서 화해하고, 기분을 풀게 하고, 다시 기쁘게 하고 와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라고 말씀하신다.

 

우리의 패러다임을 바꾸시게 만드는 교훈이다. 예수님의 이 교훈은 요한1서 4장 20~21절을 생각나게 한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또한 요한1서 3장 10절을 보면, 무서운 말씀이 나와 있다.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화목이다. 평화이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실 때에도 천사들이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라고 노래한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그 후에 부활하시고 나서 제자들에게 오셔서 먼저 하신 말씀도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였다.

하나님께서는 화목, 화해, 평화, 평강을 제일 중요시 여기신다. 에베소서 2장 14절에 보면,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라고 나온다. 예수님의 존재 속성 자체가 화평이신 것이다. 예수님은 인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화해를 이루셨다. 그러니까 당연히 인간과 인간 사이에도 화해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화목을 마음에 새기며, 친구관계 속에서 나의 마음에 맞는 친구뿐만 아니라, 나의 마음과 스타일에 맞지 않는 친구들도 이해하고 화목을 이루며 사랑을 전하는 믿음의 청소년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김성중 교수 장신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