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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교육이야기 ] 멘토가 멘티에게-10대를 향한 조언 <2>  

작성자
기독교교육리더십연구소
작성일
2024-03-14 16:29
조회
6

 

 

상처입은 치유자의 삶 살아가기

 

[ 기독교교육이야기 ] 멘토가 멘티에게-10대를 향한 조언 <2>  

김성중 교수

2017년 10월 25일(수) 13:45

 

헨리 나우웬이라는 사제는 '상처입은 치유자'라는 용어를 자신의 책 제목에 사용하면서 기독교인의 정체성을 제시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다양한 경험을 한다. 아픔도 경험한다. 슬픔도 경험한다. 예기치 못한 고난도 경험한다. 배신도 경험한다. 그 경험 속에서 상처를 받는다.

 

청소년들을 만나 보면 예민한 시기이기 때문에 그런지 삶의 경험 속에서 쉽게 상처 받는 것을 본다. 청소년들은 그 상처 때문에 힘들어한다. 상처 때문에 슬픔과 죄책감을 가지고, 인생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분노의 감정 속에 사로잡혀 기쁨이 사라진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상처 입은 자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 기억할 것은 상처는 누구나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자는 그 상처를 신앙으로 치유해서 다른 사람의 상처를 만져주고, 그 상처에 약을 발라주는 치유자가 되어야 한다.

 

창세기 35장 18절에 보면 기고한 운명을 지니고 태어난 한 아들이 나온다. 그의 이름은 베노니이다. 베노니는 아버지 야곱과 어머니 라헬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그러나 라헬이 몸이 약해 그 아들을 낳으면서 죽게 되었다. 죽기 바로 전에 숨을 헐떡이면서 태어나는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라고 짓는다. '베노니'의 이름의 뜻은 '슬픔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엄마의 입장에서 볼 때 이 아이를 낳을 때 죽게 되어서 슬프고, 이 아이는 엄마 없이 살게 되니 슬퍼서 이름을 '슬픔의 아들'이라고 지었던 것이다. 베노니를 낳고 라헬은 죽는다. 라헬의 남편이었던 야곱의 입장에서는 모든 것 다 바쳐 사랑했던 라헬이 죽은 것이니 얼마나 슬펐겠는가! 그러나 야곱은 모든 슬픔을 극복하고, 라헬이 베노니라고 이름 지은 것을 '베냐민'으로 바꾼다. '베냐민'라는 이름의 뜻은 '오른손의 아들'이다. 유대 사회에서 오른편은 축복을 상징한다. 그래서 베냐민의 이름의 뜻은 '복의 아들'이다.

이름에는 그 사람의 인생이 담겨져 있다. 이름에는 그 사람의 미래가 담겨져 있다. 아이의 이름에는 이름을 지어준 자의 뜻이 담겨져 있다. 그 이름의 뜻대로 살라는 것이다. 베노니가 그 이름대로 살았다면 정말 슬픔 속에 살았을 것이다. 자기 때문에 엄마가 죽었다는 죄책감 속에서 살았을 것이다. 상처와 원망 속에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혜로운 아버지 야곱은 그 아들을 부인이 남긴 최고의 선물로 받아들이면서 그 아들의 이름을 '복의 아들'로 바꾼 것이다. 슬픔의 아들에서 최고로 존귀한 아들이 된 것이다. 베냐민은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잘 자라났다. 모든 형제들로부터 사랑을 받으며 잘 자라났다. 실제로 복 있는 아들이 되었다. 자칫했으면 처절한 죄책감 속에서 힘들게 살았을 베노니가 아버지와 형제들로부터 최고의 사랑을 받는 베냐민으로 자란 것이다.

 

우리 청소년들도 베노니의 삶에서 베냐민의 삶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이다. 베노니의 삶에서 베냐민의 삶으로 변화되려면 예수님의 복음의 능력을 믿으면 된다. 예수님의 복음의 능력은 고린도후서 5장 17절의 말씀이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과거는 지나갔다. 과거의 아픈 기억, 아픈 상처, 죄책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내려놓으면 된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나의 모든 과거를 대신 지시기 위함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를 베냐민으로 부르셨다는 믿음의 고백을 가지고 살면 된다. 자기 스스로 "나는 슬픈 인생이다. 괴로운 인생이다. 죽지 못해 사는 인생이다"라는 고백만 하면 인생이 진짜 그렇게 된다.

왜냐하면 생각 속에 슬픔, 죄책감, 괴로움만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베냐민의 인생이다. 나는 복 받는, 기쁨의 하나님의 자녀다"라고 고백하면 진짜 그렇게 되는 것이다. 이 고백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믿음에서 우러나와야 한다. 그때 희망찬 변화가 일어난다. 상처는 곪으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으라고 있는 것이다. 나아서 더 건강한, 튼튼한 살이 되어 살아가라는 것이다. '상처 받아 슬픈 자' 되지 말고, '상처 극복해 기쁜 자'로 살아가는 지혜로운 청소년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김성중 교수

장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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