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신저. 김성중 목사

로마서 8장 31-39절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럼,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답게 살아갈 수 있을지 간단하게 적용점을 나눠 보겠습니다.

첫째, 정죄 속에 빠지지 않고,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정죄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자녀도 일상 속에서 죄를 짓습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죄를 지었을 때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 우리는 부모님의 자녀이지만, 부모님께 잘못을 저지르지요..그렇다고 부모님이 우리를 정죄하며, 집에서 쫓아내십니까? 그렇지 않으시지요..그럼 우리가 해야할 것은 무엇입니까? 잘못했다고 부모님께 용서를 비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라면 잘못했으면 바로 회개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3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때 수제자였던 베드로는 어떻게 예수님께서 내 더러운 발을 씻기느냐고 팔짝 뜁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시지요. 그랬더니 베드로가 “그럼,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놀라운 말씀이지요. 예수님 믿는 자는 벌써 목욕한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목욕한 자도 밖에 나갔다 오면 발이 더러워지지요. 마찬가지로 예수님 믿는 자도 일상 속에서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지요? 발만 닦으면 됩니다. 그 일상적인 죄를 하나님께 회개하고 용서를 빌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일 좋아하시는 자녀는 핑계대지 않고, 회개하는 자녀입니다.

이스라엘 첫 번째 왕 사울과 두 번째 왕 다윗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사울은 하나님께서 버리셨다는 것이고, 다윗은 끝까지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차이는 다름 아닌 회개의 차이였습니다. 솔직히 둘 다 죄를 지었고, 오히려 다윗이 사울보다 훨씬 더 큰 죄를 지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사울을 버리시고 다윗을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그 이유는 사울은 무엇이 죄인줄 알았을 때 핑계를 댔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이 안 와서 제사를 먼저 드렸어요...하나님께 제사드리려고 양과 소를 죽이지 않았어요...” 자신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핑계만 대었다는 것입니다. 반면 다윗은 바로 회개의 자리로 나아갑니다. 철저하게 울면서 자신의 잘못을 회개합니다. 그 회개의 눈물을 하나님께서 귀히 보시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사랑을 어느 순간에도 절대로 의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항상 사랑과 믿음은 같이 진행됩니다. 고전 13:13에 보면, “믿음, 소망, 사랑”은 항상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항상 같이 있다는 뜻입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 믿음이 있습니다. 믿음이 있는 곳에 사랑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의심한다면, 하나님을 믿는 믿음조차 의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이 점점 믿어지지 않으면 당연히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과 신앙도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어느 순간에도 의심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과 맞물려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뭔가 잘못했거나 신앙생활을 소홀히 할 때 주로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때도 우리를 놓지 않으십니다. 물리적으로 표현하면, 하나님은 내 오른편에 항상 계셔서 내 옷을 잡고 계시는데, 나는 왼 편을 보면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지 않는다고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고백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셋째, 나의 삶의 현장을 예수님의 사랑이 넘치는 곳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당연히 나의 삶의 현장을 예수님의 사랑이 넘치는 곳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이유는 예수님의 사랑 가지고 살라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나눠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3장에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고 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이것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예수님은 똑같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섬기는 사랑을 보여주었지? 희생하는 사랑을 보여주었지? 낮아지는 사랑을 보여주었지? 그럼 너희도 나처럼 섬김을 받지 말고 섬겨봐. 가지려고만 하지 말고 희생해봐. 높아지려고만 하지 말고 낮아져봐.”

솔직히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사는 것은 어렵습니다. 희생하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데요..손해보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데요..그런데 그 불편함을 감수해야 예수님의 사랑이 가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예수님처럼 행동하고 살아가는 그 곳에 예수님이 임하시고, 예수님의 사랑이 넘치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이, 우리의 학교가, 우리의 삶의 터전이 천국으로 바뀌기 원하세요? 싸우지 않고 화목하며 예수님의 사랑이 넘치는 곳으로 바꾸고 싶으세요? 그럼, 예수님처럼 사랑하세요..예수님처럼 불편을 감수하세요, 예수님처럼 낮아지세요..그 때 나의 모든 삶의 현장이 은혜의 자리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넘치는 자리가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무한히 큽니다. 그 어떤 것도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임을 절대로 의심하지 않고, 회개의 자리를 소중히 여기며 하나님의 희생하는 사랑, 낮아지는 사랑, 섬김의 사랑을 통해 나의 삶의 현장을 은혜의 자리로 가꿔가는 예수님의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망합니다.

김성중 목사

-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

- 기독교교육리더십연구소 소장

- 전국청소년수련회 강사

[출처] [Message]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십니다! (4)|작성자 꿈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