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신저. 김성중 목사

마태복음 7장 13~14절

예전에 유행했던 광고 문구 중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남들이 no 할 때, yes 하며, 남들이 yes 할 때, no 라고 하겠습니다!"

 

우리 기독교인의 좌우명도 위의 광고 문구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이 no 라고 할 때 yes를 선택하며, 다른 사람이 yes 할 때 no를 선택할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기독교인입니다.

 

그러나 기준은 반드시 있습니다. 내 기분대로, 내 생각대로, 내 감정대로 다른 사람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기준에 의거해서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행동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 민수기 13장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있을 때 모세가 가나안 땅으로 각 지파의 대표되는 12명을 가나안 땅에 정탐 보내는 장면이 나옵니다. 12명이 40일동안 정탐하고 와서 어떤 보고를 합니까? 10명은 그 땅에 들어가면 우리는 그 땅 백성들에게 완전히 맞아 죽을 것이라고 부정적인 보고를 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을 광야로 오게 한 모세를 원망합니다. 즉, "no"의 보고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은 "yes"의 보고를 합니다. "아닙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왜냐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기로 약속한 땅이기 때문입니다." 민수기 14:8~9를 보면, 다음과 같은 믿음의 보고가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는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나머지 열 명은 가나안 땅에 거하는 백성들을 싸움 잘하는 거인들로 보았는데, 여호수아와 갈렙은 우리가 먹는 밥으로 보았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현실을 보지 않고, 가나안 땅으로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사람들은 다수결에 따랐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의 말을 듣지 않고 나머지 열 명의 말을 신뢰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수아와 갈렙을 돌로 죽이려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판결을 내리십니다. 판결 결과는 여호수아와 갈렙의 승리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와 갈렙의 편을 드시며, 그들에게 복을 내리십니다. 반면 열 명의 정탐꾼은 죽이십니다. 그리고 무서운 벌을 내리셔서 40일 정탐한 날 하루를 1년으로 계산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있게 하십니다. 그래서 출애굽 1세대는 광야에서 모두 생을 마감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간다고 말한 여호수아와 갈렙 만이 출애굽 1세대 가운데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는 엄청난 복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한 결과입니다. 이런 모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비전 있는 사람이요, 세상에 변화를 던져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이 있습니다. 그는 미국 흑인 인권운동을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이끈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노벨평화상도 받았으나, 결국 암살당했습니다. 그는 그 당시 미국에서 일반화되었던 흑인차별에 대해 당당히 NO를 선포했습니다. 왜냐면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고, 성경의 메시지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평등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루터 킹 목사님은 성경의 말씀, 하나님의 뜻을 이 땅 위에서 실현하기 위해 흑인 인권운동을 펼친 것이었습니다. 그는 평화주의자였습니다. 그는 백인이 싫어서 백인에 반대하기 위해서 인권운동을 펼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백인과 흑인이 다 같이 하나님 안에서 어울려 사는 꿈을 꾸었습니다. 왜냐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의거해서 차별이 당연시된 시대에 당당히 no라고 외친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의 꿈은 결국 시간이 지나서 이루어졌습니다. 이 비폭력 인권운동의 결과로 흑인차별법이 폐지되었고, 그 이후 흑인과 백인의 연합이 서서히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 최근에는 오바마 대통령이 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남들이 "yes" 할 때, "no"를 선택할 줄도 아시기 바랍니다. 남들이 "no"라고 할 때, "yes"를 선택할 줄도 아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좁은 문으로 가라고 우리에게 권면을 하십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우리는 넓은 문을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넓은 문은 다른 사람들이 많이 가는 문이고, 들어가기가 편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좁은 문은 많은 사람들이 가지 않는 문이고, 들어가기도 어렵기 때문에 잘 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정확히 언급하십니다. 넓은 문은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이고, 좁은 문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라고 말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다 가는 문이라고 그냥 따라서 들어가지 마십시오. 판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약속에 의지해서 판단하십시오. 주의할 점은 내 판단, 내 생각, 내 감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정의에 의거해서 판단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에 의거해서 좁은 문으로 가십시오, 분명, 좁은 문으로 가기 위해서는 많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많은 사람의 반대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용감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21장을 보면, 사도바울이 로마로 가기 전에 사람들은 사도바울이 예루살렘에 가지 못하도록 뜯어 말립니다. 거기 가면 사도바울 반대파들이 바울을 잡아 죽일 것이라는 것입니다. 바울도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갑니다. 사도행전 21:12~14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 곳 사람들과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 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그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더라."

 

바울은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예수님의 복음 전파라는 주님의 뜻을 위해 죽음까지도 두려워하지 않고, 용감하게 좁은 문을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에 의거해서 용기를 가지고 좁은 문으로 가십시오. 좁은 문을 선택해서 통과하기까지는 어렵지만, 일단 통과하고 나면, 거기에는 참된 생명과 은혜, 복이 넘칩니다. 하나님이 이것을 약속하셨고, 보장해 주십니다. 그 믿음을 가지시고, 좁은 문을 선택하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망합니다. 아멘.

김성중 목사

-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

- 기독교교육리더십연구소 소장

- 전국청소년수련회 강사

[출처] [Message] 좁은 문으로 가라!|작성자 꿈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