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신저. 김성중 목사

요나서 3장1~10절

지난 주에 이어서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둘째, 하나님은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는 자들을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요나가 니느웨에 가서 선포한 말씀은 심판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사십일이 지나서 니느웨가 무너질 것이라는 심판의 선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인식할 때 사랑의 하나님으로만 생각하는 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잘못해도 무한히 받아주시고, 너그러우시고, 인자하신 사랑의 하나님만 우리의 하나님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도 되시지만, 공의의 하나님도 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못했을 때 혼도 내시고, 철저하게 회개하지 않으면 무섭게 벌도 내리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구약의 하나님은 아버지의 역할을 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을 보여주신 것이고, 신약의 하나님은 어머니의 역할을 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같이 있어야 부모님이 되는 것처럼, 공의의 하나님과 사랑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공의의 하나님은 우리의 개념 속에서 받아들이지 않으려 하고, 우리가 생각하기에 좋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모든 것을 다 받아주시는 하나님, 다 용서해주시는 하나님만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대한민국의 교회가 그렇게 많고, 기독교인이 그렇게 많은데도 한국사회가 타락한 원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바로 공의의 하나님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자기 멋대로 살고, 잘못은 다 해 놓고 사랑과 용서의 하나님이 나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실 것이라고 믿으면서 또 잘못된 짓을 반복합니다. 즉, 기독교의 회개가 값싼 회개가 된 것입니다.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받아주시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그 회개는 철저하게 이전의 삶에서 돌이키는 것을 말합니다. 회개하고 또 잘못하고, 회개하고 또 반복된 잘못을 계속한다면 진정으로 회개했다고 보기가 힘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경고의 의미로 회개해도 그 죄에 대한 벌을 내리시는 적도 있습니다. 다윗왕은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아를 죽이는 무서운 죄를 범하고 나서 나단 선지자의 지적을 받고 철저하게 회개하나 죄의 결과로 낳은 첫째 아들은 죽게 되는 벌을 받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성경의 장은 바로 신명기 28장입니다. 왜냐하면 “복”에 대해 많이 언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절에서 14절까지 보면,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에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복, 복, 복 계속 나오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신명기 28장 15절 이하의 말씀에는 주목하지 않습니다. 그 뒤의 말씀은 저주입니다.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고 네게 미칠 것이니 네가 성읍에서도 저주를 받으며 들에서도 저주를 받을 것이요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저주를 받을 것이요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우양의 새끼가 저주를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으니라.“

우리는 우리의 판단대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규정하면 안 됩니다. 성경 전체에 나오는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죄에 대해 철저하게 회개하면 받아주시고, 복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반대로 철저하게 회개하지 않고, 계속 잘못된 길로 가면 심판하시고, 벌 내리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심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실제로 오늘 본문에 나온 니느웨는 철저하게 회개해서 하나님의 용서를 받습니다. 하지만, 그 후에 또 이전의 죄악된 모습으로 돌아가고 다시 나훔 선지자를 통해 심판을 선포하지만 회개하지 않아서 나중에 바벨론에 의해 철저하게 망하게 됩니다.

셋째, 하나님은 믿는 자들이 언제 어디서든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언제 어디서든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를 찾으십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선포하고, 죄에 대해 철저하게 회개하기를 촉구하며,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를 의지하며 살아갈 것을 가르치는 것이 바로 전도입니다. 언제, 어디서든지 전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면에서 전도는 믿는 자들의 의무입니다.

요나는 자기 마음 속에서는 하나님의 심판과 하나님의 뜻을 전하기가 싫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기에 했습니다. 마태복음 28:19~20절의 예수님의 마지막 지상명령에서도 전도는 의무로 나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여러분! 우리가 전도하면 안 들을 것 같지요? 그렇지 않습니다. 요나처럼 해도 니느웨 사람들은 마음에 찔림을 받고 회개합니다. 나의 말로 전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말을 사용하셔서 전도를 가능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누가복음 12장 12절의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 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라.”는 말씀을 붙들고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고,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공의를 이해하시고, 전도자의 삶으로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망합니다. 아멘.

김성중 목사

-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

- 기독교교육리더십연구소 소장

- 전국청소년수련회 강사

 

[출처] [Message] 전도자의 삶으로의 변화 (2)|작성자 꿈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