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신저. 김성중 목사

창세기 6장9-12절

여러분이 잘 아시는 것과 같이 노아는 방주를 만든 사람입니다. 여러분, 최초의 하나님의 심판이 어떤 심판이었는지 아십니까? 최초의 심판은 하나님이 물로 심판하신 것입니다. 얼마나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안 들었으면 하나님께서 물로 심판을 하셨겠습니까?

노아가 살았던 시대는 지금보다 더 악한 시대였던 것 같습니다. 창세기 6장 11,12절을 표준새번역으로 보면 노아가 살았던 시대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하나님이 보시니, 세상이 썩었고, 무법천지가 되어 있었다 하나님이 땅을 보시니, 썩어 있었다. 살과 피를 지니고 땅 위에서 사는 모든 사람들의 삶이 속속들이 썩어 있었다.” 성경에도 이런 거친 말이 나옵니다. 세상이 썩었다는 것입니다. 노아가 살고 있었던 시대는 지금과 비교할 수도 없이 부정부패가 판을 치고,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죄악으로 가득 찬 세상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참고 참으시다가 결국 세상을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십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모든 사람을 다 죽이시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심혈을 기울여서 만드신 인간이라는 존재가 없어지잖아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을 살리기로 결심하십니다. 누구를 살릴까 보시다가 한 사람을 발견하십니다. 그 사람이 바로 노아입니다. 대단한 노아이지요.

그럼, 과연 노아란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기에 노아가 유일하게 하나님의 심판에서 제외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노아가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럼, 노아의 어떤 면이 하나님을 감동시켰을까요?

첫째, 노아는 의인이었습니다.

“의롭다”라는 원어적 의미는 “곧다”라는 뜻이다. 즉, 노아는 하나님께로 향해 곧았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적지는 하나님이시다. 노아는 그 목적지로 가는 길이 곧았다는 것이다. 구불구불 가는 길은 좋지 않다. 구불구불 가는 길은 흔들리는 신앙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아니 사람이 어떻게 의로워질 수 있습니까? 네. 맞습니다. 사람은 누구도 의로워질 수 없습니다. 로마서 3장10절을 보면,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나옵니다. 그렇습니다. 의인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럼, 의롭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바로 의로워지려고 노력했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만 바라보려고 노력했다는 것입니다. 노아가 살던 시대는 아까 본 것처럼 하나님만 바라보기가 힘든 세대였습니다. 썩을 대로 썩은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그 상황 속에서 노아는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가지 않고, 단호하게 하나님을 바라보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요즘 우리 시대도 노아의 때나 별반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컴퓨터만 켜면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고, 유혹하는 손길이 얼마나 많습니까? 세상이 어두워지고, 유혹의 정도가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하나님만 바라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물의 흐름에 따라 물고기는 움직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편하고 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물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기는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엄청난 노력이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유혹과 어두움이 손짓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그렇게 세상적으로 사는 것이 편하고 쉽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도 별반 어려움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거슬러 하나님을 바라보고자 한다면,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려고 한다면 그것은 엄청난 노력과 의지가 필요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패한 시대에 믿음을 지키는 일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 어려움을 이기고 하나님만 바라보고자 노력하는 자는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을 받게 됩니다.

옛날 광고 중에 이런 광고가 있습니다. 남들이 “예스”할 때 “노”할 수 있고, 남들이 “노”할 때 “예스”할 수 있는 사람... 믿는 사람들은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이것은 모두 다른 사람과 다르게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에 대해서는 타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신약성서에는 노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칭찬합니다. 히브리서 11장7절에는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며 그 집을 지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고 나와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2장5절에서 베드로는 노아에 대해 오직 의를 전파하는 자라고 표현합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어두울수록 빛은 더 빛나고 밝은 법입니다. 세상이 어두워지면 질수록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진짜 하나님의 사람을 구별하기가 쉬워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 바라봅시다.

둘째,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였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명령에 의해 살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하나님이 언제 어디서나 나와 함께 하신다는 인식을 가지고 사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생각을 가지고 생활해 보세요. 경건한 생활, 의로운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세상 유혹에 빠지는 것은 주로 혼자 있을 때입니다. 그러나 그 혼자 있을 때도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가지면 유혹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생길 수 있습니다.

셋째, 잘 기다리는 인내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세상에 썩었고, 부패했으니 세상을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시면서 그러나 너와 너의 가족들을 살려주겠으니 방주를 만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방주를 만듭니다. 방주를 만드는데 1년도 아니고, 2년도 아니고, 100년 정도 걸렸습니다. 그 방주를 만들면서 얼마나 주위 사람들에게 욕을 먹고, 손가락질을 받았겠습니까? 노아를 미친 노인네라고 생각했겠지요.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고 묵묵히 방주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때와 그 약속이 성취된 때는 100년이나 차이 났습니다. 우리가 보기에 100년은 엄청나게 긴 날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측면에서 보면 100년은 하루아침과 같습니다. 베드로후서 3장8절에서 베드로는 “주님께서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뜻이 이룰 때는 우리가 생각하는 때와 다릅니다. 하나님의 시간표와 우리의 시간표는 다릅니다. 우리의 역할은 하나님의 시간표, 즉 하나님의 때를 묵묵히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고 기도하고 나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십시오.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신앙의 중요한 요소가 바로 기다림, 즉, 인내입니다.

잘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며, 하나님의 복을 받습니다. 잘 기다리는 인내의 사람이 되십시오. 하나님께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은 하나님과의 관계와 사람과의 관계가 다 연결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감사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면, 다른 사람들도 칭찬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기다리는 인내의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참고, 기다려주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감동시킨 사람 노아의 삶의 결과는 구원이었고, 새로운 인간 세대의 조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감동시키면 하나님이 끝까지 그 사람을 지키시고 보호하십니다. 아니 그의 가족들까지 보호하십니다. 노아로 인해 노아의 가족들은 구원을 받았던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하나님을 감동시킨 사람 노아처럼 우리도 하나님만 바라보는 의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인내의 사람, 기다림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도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동을 드리는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정을 받는 사람이 다 됩시다.

김성중 목사

-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

- 기독교교육리더십연구소 소장

- 전국청소년수련회 강사

제주도 한라산 관음사 코스 단풍

[출처] [Message]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사람(1) 노아|작성자 꿈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