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신저. 김성중 목사

시편 122편 6-9절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겠습니까? 바로 마음에 평화가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이 평안이 얼마나 중요한지, 예수님이 이 세상에 태어나셨을 때, 천사들은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라고 노래를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치유 기적을 베푸실 때도 병이 나은 사람에게 “평안히 돌아갈지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시고 난 후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평안이 있을지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최고의 축복은 바로 평안의 축복입니다.

 

오늘 본문 시편은 다윗이 쓴 시입니다. 시편을 더 잘 이해하는 방법은 시편의 표제어를 먼저 보는 것입니다. 이 122편의 표제어가 무엇입니까? “다윗의 시, 곧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입니다. 시편 120-134편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로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의 원어로 보면, “계단들에 올라가는”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예루살렘 성전의 계단에 올라갈 때 불렀던 노래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얼마나 성전을 사모했으면, 성전계단에 올라가면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짓고, 그 노래를 불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120-134편은 예루살렘 순례길에 부르는 노래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고 성경은 언급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평화로울 수 있도록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어떤 곳입니까?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신앙의 수도입니다. 가장 거룩한 곳입니다. 왜 예루살렘에 평안이 필요할까요? 그 답은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성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에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장소가 하나 밖에 없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입니다. 신명기 12장에 보면, 중앙성소사상이 나옵니다. 한 곳을 정해서 거기서 예배를 드리고 제사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 한 곳이 바로 예루살렘 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다윗이 의도하고 있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예루살렘 성전이 평화하기를 위한 기도였고, 더 넓게는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이라는 도시가 평화하기를 위한 기도였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예루살렘은 외적에게 공격을 많이 받았습니다. 예루살렘이라는 지명의 뜻도 “평화의 성” 인데, 평화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공격받으면 당연히 예루살렘 성전이 공격을 받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의해 망할 때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성전에 쳐 들어와서 성전을 무너뜨리고 성전 안에 거룩한 기물들을 다 빼앗아 가지고 갔습니다. 예루살렘을 정복하려는 치열한 싸움이 역사적으로 계속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예루살렘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나누어져서 싸우고 있습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 예루살렘을 위한 기도를 우리의 기도에 적용해 보면, 첫째, 우리 나라의 평안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은 나라를 상징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을 지키면 나라를 지킨 것이고 예루살렘이 정복당하면 나라가 정복당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나라의 평안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딤전2:1-3에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디모데전서 2장에서 기도에 대해 언급할 때, 첫째로 권한 것이 위정자들을 위한 기도였습니다. 즉,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들을 위한 기도가 바로 나라를 위한 기도였다는 것입니다. 나라가 평안하지 않으면 우리도 없습니다. 나라가 평안하지 않으면 우리도 마음 편하게 신앙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라의 평화를 위해서 간구해야 합니다.

 

둘째, 교회의 평안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기도가 다윗이 1차적으로 의도한 기도입니다. 교회의 평안을 위해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이 찾아옵니다.

 

성령님이 임하시는 교회의 특징은 평안이 있습니다. 은혜가 임하면 평화가 오는 것입니다.

 

행9:31에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교회 안에서 평화가 임하면, 교회가 든든히 서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서 성령의 위로로 교회가 부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시기와 분쟁이 있는 고린도교회에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전1:10)고 말씀했던 것입니다.

 

셋째, 내 신앙의 평안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평안을 위한 기도를 개인기도에 적용하면, 내 신앙의 평안을 위한 기도입니다. 내 신앙이 평안해야, 교회가 평안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온전해 져야 다른 사람과도 평화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간구해야 하는 것은 나의 신앙이 평안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온전해지도록, 나의 신앙이 온전한 신앙이 될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예루살렘의 평안을 위한 기도를 드리고 나서는 내 형제와 친구의 평안을 위해서 마지막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8절에 보면, “내가 내 형제와 친구를 위하여 이제 말하리니 네 가운데에 평안이 있을지어다.” 중보기도를 한 마디로 정의하면 무엇입니까? “다른 사람의 평안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중보기도를 함에 있어서 궁극적인 기도는 이 평안을 위한 기도입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몸이 아픈 사람이 몸이 빨리 낫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대학 들어가야 하는 학생이 원하는 대학 들어가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만, 그 보다도 우선적으로 신앙과 마음의 평안을 유지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병이 나아도 신앙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병이 나은 것은 아무 소용없는 것입니다. 몸의 병이 나아도 마음의 평안과 기쁨이 없다면 아무 소용 없는 것입니다. 좋은 대학 들어가도 좋은 대학 들어가서 교회에 나오지 않고 세상으로 나아간다면 아무 소용 없는 것입니다. 좋은 대학 들어가도 허탈감만 든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반면에 혹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 병이 낫지 않아도, 경제적인 위기가 나아지지 않아도, 좋은 대학에 못 가도 마음이 평안하고, 고난 중에 더 하나님을 붙잡게 됨으로 말미암아 신앙이 평안하다면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으로 세워져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중보기도할 때, 그 사람의 신앙과 마음의 평안함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도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 간절히 우리나라의 평안함을 위해 기도합시다. 우리 교회의 평화를 위해서 기도합시다! 내 신앙의 화평을 위해 기도합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신앙과 마음의 평안을 위해 기도합시다! 하나님께서는 평화를 위해 구체적으로 기도하는 사람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선하게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아멘...

김성중 목사

-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

- 기독교교육리더십연구소 소장

- 전국청소년수련회 강사

[출처] [Message] 기도시리즈7 _ 평안을 위한 간구|작성자 꿈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