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신저. 김성중 목사

베드로전서 5장5~6절

여러분은 겸손하십니까? 겸손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의식적 겸손입니다. 이것은 겸손한 척 하는 것입니다. 겸손한 말과 행동을 하면서 자신이 지금 겸손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강요된 겸손입니다. 이것은 나보다 능력있고 재능있는 사람이 옆에 있을 때, 혹은 회사에서 나보다 높은 직책에 있는 사람 옆에 있을 때 어쩔 수 없이 나오는 겸손입니다. 세 번째는 진짜 겸손입니다. 이 겸손은 삶 자체가 겸손인 것입니다. 자신이 겸손한 말과 행동을 하면서도 겸손하고 있다고 생각되거나 느끼지 않는 삶 자체가 겸손인 것입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겸손입니다.

아프리카 선교사이자, 의사이자, 목사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슈바이처 박사는 아프리카 선교사역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그 소식을 듣고 수많은 취재진과 수많은 사람들이 슈바이처가 도착할 기차역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기차가 도착하고, 사람들은 1등칸 앞에서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손님들이 다 내릴 때까지 슈바이처 박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2등칸에 타고 오셨나 생각해서 2등칸 쪽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설마 하고 제일 좋지 않은 3등칸 쪽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3등칸의 맨 끝에서 슈바이처 박사가 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놀라서 그에게 가서 인터뷰를 했습니다. "박사님처럼 훌륭한 분이 왜 좋지 않은 3등칸을 타고 오셨어요?" 그러자 슈바이처 박사가 "4등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꽤 오래 전에 텔레비전에 나왔던 감동적인 광고가 있습니다. 어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나오는데, 할머니가 전화기를 냉장고에 넣었습니다. 할아버지는 그것을 발견했으나 아내를 생각해서 그 핸드폰을 제 자리에 가져다 놓았습니다. 아내가 잘못한 것을 알았으나, 그것을 지적하면 아내가 무안해하고, 자신이 치매 걸렸는지 걱정할까봐 배려하는 마음으로 모르는 척 한 것입니다. 그 뒤에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양말좀 거꾸로 신지 말라고 주의를 주지만, 할아버지는 내색도 않습니다. "당신은 더 큰 실수 하면서 나한테 뭐라고 합니까?"라고 말하지 않고 할머니의 실수를 감싸줍니다. 이것이 바로 겸손입니다. 사랑의 마음이 있는 사람은 겸손할 수 있습니다. 사랑이 있으면 져 줄 수도 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씨름을 하면, 아버지가 이기는 사람이 없습니다. 아버지가 이길 수 있으나 져 주는 것입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씨름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아버지가 항상 아슬아슬하게 져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린 시절에 내가 아버지보다 조금 더 힘이 센 줄 알았습니다. 겸손은 이런 것입니다. 아들을 사랑하기에 져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도 야곱과 싸워서 져 주셨습니다. 그리고 야곱의 이름도 "너가 하나님과 겨루어 싸워 이겼다"라는 의미의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십니다. 진짜 하나님이 야곱한테 진 것입니까? 아니지요. 하나님이 야곱을 사랑해서 져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겸손하고 싶습니까?

여러분 삶에서 존재에 대한 사랑을 먼저 회복하십시오. 하나님에 대한 사랑, 인간에 대한 사랑, 살아있는 존재에 대한 사랑이 있으면 겸손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베드로 사도가 젊은이들에게 교훈을 주십니다.

5절에 보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서로 겸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장로는 나이 많은 교회의 어른입니다. 순종하는 것이 바로 겸손인 것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 남편, 아내에게 순종하는 것, 친구에게 순종하는 것... 이 모두가 바로 겸손인 것입니다.

그리고 5절 하반절에는 우리가 왜 겸손해야 하는지에 대해 나와 있습니다. 우리가 겸손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지만,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겸손의 반대는 교만인데,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싫어하시는 정도가 아니라 미워하시고, 적으로 여기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교만은 마귀의 속성이자, 마귀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원래 천사였으니 자신의 능력을 신뢰하며, 교만하여 자신도 하나님 같이 되려다가 타락한 것입니다. 그래서 마귀는 우리에게 우리가 최고라고 속삭이며 하나님 같이 되라고 유혹합니다. 에덴동산에서 마귀가 하와를 유혹할 때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창세기 3:5에 다음과 같이 유혹합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그래서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대적하는 것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마귀에 속해서 자신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믿지 않거나 신뢰하지 않기에 하나님이 그를 대적하시고, 물리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 가장 큰 교만한 죄입니다. 조심하십시오!! 그러나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자기 자신을 믿지 않고 하나님을 믿기에 하나님께서 큰 은혜와 선물,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을 의지하지 않기에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6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그러면 때가 되면 높여주실 것입니다."

나를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 의지하면서 겸손하게 살면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높여 주십니다.

우리는 겸손하면 우리가 손해 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겸손하면 나는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닌지, 내가 인정 못 받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 두려워하고 걱정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바로 믿음 없는 모습인 것입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다 높여주십니다. 그래서 겸손한 사람 치고 잘못된 사람 본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을 사랑하시기에 그를 하나님의 힘으로 도와 주시기에 잘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겸손함을 통해 하나님의 큰 인정과 은혜, 복을 받는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망합니다. 아멘.

김성중 목사

-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

- 기독교교육리더십연구소 소장

- 전국청소년수련회 강사

[출처] [Message] 신앙실천시리즈 13 _ 겸손|작성자 꿈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