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신저. 김성중 목사

요한복음 13장 3~10절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로마서 3장23절의 말씀에는 "모든 사람은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나와 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행동으로 드러난 것, 율법을 어긴 것만 죄로 규정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죄의 범위를 더 넓히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의 죄를 지적하십니다. 마태복음 5장28절에 보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죄를 지었으면, 철저하게 회개를 해야 합니다.

기독교에서 말하고 있는 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안 믿는 죄입니다. 이것이 가장 큰 죄입니다.

요한복음 3장18절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예수님은 믿지 아니하는 자는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라고 나옵니다.

예레미야 2장13절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인간의 잘못은 첫째, 생수의 근원되신 하나님을 버린 것과 둘째,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자기 멋대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안 믿는 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으면 됩니다. 우리의 구원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놀라운 기적을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가장 큰 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둘째는 하나님을 믿게 된 자가 일상적으로 짓게 되는 죄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 예수님을 믿는 자도 일상적인 죄를 짓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믿는 자입니다. 그렇다고 죄를 짓지 않습니까? 죄를 짓습니다.

일상적인 죄는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모든 것이 죄입니다. 죄인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기준은 성령의 9가지 열매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입니다. 이 성령의 9가지 열매와 관련 없는 것이 바로 죄입니다. 사랑의 반대인 미움은 죄입니다. 희락의 반대인 불평은 죄입니다. 화평의 반대인 싸움과 갈등은 죄입니다. 오래참음의 반대인 조급함은 죄입니다. 자비의 반대인 복수는 죄입니다. 양선의 반대인 무관심, 무정함은 죄입니다. 충성의 반대인 대충은 죄입니다. 온유의 반대인 분노는 죄입니다. 절제의 반대인 중독은 죄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 마음에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맺으십시오. 일상적인 죄도 안 짓기 위해 노력하십시오, 그러나 살다보면 인간인지라 죄를 지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도 후회와 한탄 속에 머물지 말고, 하나님께 회개하고 다시 일어서십시오. 진실한 회개가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또 용서해 주십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면서 죄와 회개에 대해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에 제자들을 다 불러서 최후의 만찬을 베푸셨습니다. 그리고 만찬 중에 일어나서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두르신 수건으로 물기가 있는 발을 닦으셨습니다.

그 당시에 이 장면은 상상을 못할 일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조선시대보다도 더 엄격하게 신분질서가 확실한 나라인 이스라엘에서는 상상도 못하는 일입니다. 종이 주인의 발을 씻기는 것이고, 제자가 스승의 발을 씻겨주어야 하는데, 예수님은 반대로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샌들을 신고 다닙니다. 샌들을 신고 다니기 때문에 하루 종일 바깥에 나갔다 오면, 발에 먼지가 장난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광야지대가 많이 때문에 모래가 장난이 아닙니다. 그 모래, 먼지가 뒤범벅된 발을 주인과 같은 스승이 종과 같은 제자의 발을 닦아준다는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개념에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은 이처럼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을 하신 것입니다.

다른 제자들은 이러면 안 되는데, 안 되는데 생각만 하다가 계속 예수님께 발을 내미는데, 그래도 명색이 예수님의 수제자라고 자부하는 베드로는 생각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당당히 말했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어떻게 제 발을 씻기십니까? 제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십니다. 절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그러니까 나서기 좋아하는 베드로, 칭찬받기 좋아하는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그러면, 제 발뿐만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세요." 그러자 예수님은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10절의 예수님의 말씀이 죄와 회개에 대해 언급하신 명언이셨습니다. '이미 목욕한 자'는 하나님을 믿게 된 사람을 뜻합니다. 아까 죄에 대해 공부할 때, 첫 번째 죄의 문제를 해결한 사람입니다. 다시 말하면, 목욕하지 아니한 자는 하나님을 안 믿는 자, 즉, 하나님을 안 믿는 죄를 짓는 사람을 뜻합니다.

그러나 이미 목욕한 자, 즉 이미 하나님을 믿는 사람도 발은 씻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매일 세상에 돌아다니면서 모래와 먼지로 인해 발이 더러워졌기 때문입니다. 즉, 매일 세상과 접촉하여 일상적인 죄를 짓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도 위의 두 번째 죄인 일상적인 죄를 짓습니다. 그 일상적인 죄도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일상적인 죄를 씻는 것이 바로 발을 씻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독교는 회개가 출발입니다. 회개를 하면, 반드시 변화가 수반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진정한 회개를 기뻐하십니다. 그러면 진정한 회개를 했는지, 안 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변화되었는가, 안 되었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회개하고 변화가 수반되었다면, 그것이 진정한 회개를 했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계속 엄마 말을 안 들어서 엄마가 혼내고, 아이는 계속 잘못했다고 하는데도 그 잘못을 반복한다면, 그 아이가 진정으로 엄마에게 잘못을 회개했다고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왕 사울과 다윗, 그 두 사람의 공통점은 죄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사울도 죄인이고, 다윗도 죄인입니다. 오히려 다윗이 더 큰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끝까지 다윗을 사랑하셨습니다. 물론 벌은 받았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다윗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인도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다윗은 회개를 잘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죄를 깨달았을 때, 철저하게 회개했습니다. 눈물로 회개했습니다. 얼마나 회개의 눈물을 많이 흘렸는지, 시편 6장6절에는 "내가 탄식함으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라고 나와 있습니다. 반면에 사울은 회개 대신에 온갖 핑계를 댑니다. 사울의 마지막은 비참했고, 왕권은 다윗에게 넘기게 됩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지 못한 죄가 있으면 철저하게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온전히 나의 구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가치인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에서 벗어난 일상적이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죄를 안 짓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실수했을 때 너무 한탄하지 말고, 진정한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회개만이 살 길입니다. 하나님께 진정으로 회개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변화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망합니다. 아멘.

김성중 목사

-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

- 기독교교육리더십연구소 소장

- 전국청소년수련회 강사

[출처] [Message] 신앙실천시리즈 8 _ 회개|작성자 꿈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