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신저. 김성중 목사

로마서 3장 10~18절

이 세상에 살면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돈, 명예, 권력일까요?

아니요. 사랑입니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요한일서 4장8절에 의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근원, 원천이십니다.

공동체가 존재하기 위한 전제가 바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없이는 공동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사랑이 없이는 공동체가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유지될 수가 없습니다. 사랑이 없는 공동체는 그야말로 비극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이 없는 공동체는 한 마디로 지옥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사랑 속에서 공동체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럼, 사랑이 무엇일까요?

사랑은 하나님의 눈으로 존재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왜 사랑하실까요?

하나님의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각자를 사실적 존재를 살펴보면, 사랑할 수 없습니다. 나라는 존재를 객관적으로 살펴보면, 죄 많고, 부족한 사람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우리 자신을 객관적, 사실적으로 바라보면, 부족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여러분! 우리의 존재를 너무나 명확하게 밝혀서 양심에 가책이 듭니까? 사도 바울은 우리의 사실적인 존재 상태를 너무나 명확하지만, 너무나 비참하게 고발하고 있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의 사실적인 모습을 살펴보면, 의로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죄를 깨닫지도 못하고, 하나님을 찾지도 못하고, 선을 제대로 행하지도 못합니다. 우리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 같아서 우리의 혀로 남을 속이는 것을 일삼습니다. 우리의 입술에는 독사의 독과 같은 사람을 죽이는 무서운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말 가운데는 저주와 독, 미움, 분노가 가득하고, 우리의 발은 피 흘리는데 빠릅니다. 즉, 죄를 짓는 곳에는 아주 잘 다닙니다. 그러나 그 길은 파멸과 고생의 길입니다. 우리는 쾌락과 만족, 즐거움을 위해 노력하고 살아가나 그 삶 가운데서는 평안, 행복이 없습니다. 행복은 신기루의 망상일 뿐입니다. 그리고 가장 무서운 것은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뼈저리게 깨닫고 살아가고, "하나님 앞에서" 살아간다는 진정한 믿음이 있다면, 우리의 삶이 지금과는 같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모습이 없기에 우리 맘대로, 우리 멋대로 살아가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안타깝지만 여러분의 모습, 나의 모습이 바로 오늘 본문에서 설명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런 모습으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모습으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죄를 멀리 하십니다. 따라서 죄가 있는 곳에 하나님은 계실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하나 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셔서 죽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보이셨습니다. 로마서 5장8절에는 다음과 같이 나와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는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나님은 객관적인 우리의 존재 모습을 보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셨기에 우리를 사랑하실 수 있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니 우리는 사랑받을 만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왜 그렇지요?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셨잖아요.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부모님이시잖아요. 자녀가 말썽피고 사고 친다고 싫어하는 부모님 보았습니까? 오직 자녀이기에 부모님은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잘못하면 벌을 내리고 혼을 내도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자녀가 잘되라고 벌을 내리고 혼도 내시는 것입니다. 자녀가 아니고, 아무 관계가 없다면 오히려 무관심합니다. 그래서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우리가 잘못하면 혼을 내기도 하시고, 벌을 내리시기도 합니다. 그리고 잘하면 칭찬하시고, 상을 내리시기도 합니다.

여러분! 가장 무서운 것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죄를 짓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는데도 잘 되는 것, 평안한 것, 좋은 일이 계속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것은 복이 아니라, 저주입니다.

어떤 큰 교회를 담임하시는 목사님에게 누가 물어보았습니다. "목사님은 목회 하시면서 가장 힘든 일이 무엇이셨습니까?" 그 때 목사님은 이렇게 답하셨습니다. "기도 안 했는데도 교회가 부흥될 때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관점에서 사람을 바라보면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의 상태, 부족함의 상태를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남을 판단하려고 들려고 하지 마십시오.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려고 들 때 오늘 본문을 기억하십시오. 객관적인 우리의 상태로서는 의인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 죄인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네가 더 잘 낫다. 네가 더 착하다"라는 것은 도토리 키 재기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태복음 7장1~5절에서 비판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 속에는 널빤지 같은 결점이 있는데, 그것은 보지 못하고, 옆 사람에 있는 작은 먼지 알갱이와 같은 결점은 보고 비판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인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나의 부족함, 나의 한계, 객관적인 나의 죄된 모습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눈으로 사람을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각 사람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을 닮은 소중한 존재로 각 사람을 바라보십시오. 공부 잘 하는 아이만 사랑하는 부모는 진정한 부모가 아닙니다. 진정한 부모는 공부 잘 하는 아이나 공부 못 하는 아니나 다 소중합니다. 왜냐면, 공부 잘 하는지, 못 하는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 아이"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는 마태복음 5장44절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사랑합시다! 사랑만이 희망입니다. 사랑만이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힘으로는 절대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오직 사랑만이 변화와 기적을 가져올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며 살기도 모자른 이 인생의 시간 속에서 사랑 하나만으로 인생을 멋있게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망합니다. 아멘.

김성중 목사

-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

- 기독교교육리더십연구소 소장

- 전국청소년수련회 강사

[출처] [Message] 신앙실천시리즈 5 _ 사랑|작성자 꿈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