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신저. 김성중 목사

예레미야 33장 1-3 절

 

우리가 잘 알듯이 예레미야 선지자는 눈물의 선지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많이 울었습니다. 너무 울다가 슬픔의 노래인 애가까지 지었습니다.

왜 예레미야가 많이 울었겠습니까? 민족을 생각하면 마음이 깨어지고 아파서 하나님께 민족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니까 많이 울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레미야의 눈물은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의 눈물이었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남유다의 멸망을 목격한 선지자였습니다. 일찍이 이스라엘은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나뉘어져서 그 역사가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다가 B.C 721년 경에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망하게 되어습니다. 왜 망했습니까?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만 제대로 섬기지 않고, 십계명을 어기고 다른 신들에게 기웃거렸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고대 근동지방에서 유행하던 바알과 아세라라는 가짜 신들에게 기웃거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믿고, 바알도 믿는 혼합주의적인 무서운 죄를 범했기 때문입니다.

북 이스라엘의 멸망을 본 남유다 백성들은 정신을 차려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정신을 못 차렸습니다. 남 유다도 이방 신상을 버젓이 놓고 섬겼습니다. 그리고 가진 자는 없는 자를 착취하고, 사회 지도층 인사들은 타락해서 자신들의 배만 불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제 남 유다도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지 않으실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보내셔서 남유다도 영적으로 타락한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벌을 내리실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 그런데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심판을 선포합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보내셔서 남 유다를 망하게 하실 것이고, 유다 백성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게 될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 이 유다 땅은 죄로 인해서 더럽혀졌기 때문에 유다 땅이 쉬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선포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남 유다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거짓 선지자들의 말을 들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유다는 하나님이 지키시기 때문에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어찌 보면 그럴듯 하지요? 그러나 죄가 있는 상태에서 평화를 논하는 사람은 거짓 선지자입니다. 죄가 없어야 평화가 오는 것인데, 죄가 있는데도 절대 안 망하고, 평안이 있다는 것은 자신의 죄에 대한 합리화일 뿐입니다.

드디어 예레미야가 예언한 대로 바벨론 군대들이 남 유다를 무너뜨리려고 예루살렘을 공격합니다. 그러자 유다 백성들은 “이 유다 백성들은 죄가 있어 망한다”라는 말씀을 선포하는 예레미야가 민족의 배신자라고 매도하며 그를 아예 왕궁 감옥에 넣어 버렸습니다.

32장 2절에 보면, “그 때에 바벨론 군대는 예루사렘을 에워싸고 선지자 예레미야는 유다의 왕의 궁중에 있는 시위대 뜰에 갇혔으니...”

성도님들! 예레미야의 입장을 상상해보세요. 그리고 예레미야의 속 타는 심정을 느껴 보세요...자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전했는데, 백성들은 민족의 배신자라고 손가락질 하며, 자신을 왕궁 감옥에 가두어 놓았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있어서 이제 망하기 일부 직전인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나, 민족적으로나 희망은 절대 찾아볼 수 없는 그런 입장인 것입니다. 너무나 괴로워서 어찌할 수 없는 지금 상황인 것입니다. 지금 자신이 자유의 몸이라면, 뛰쳐 나가서 계속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텐데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수 있는 입장도 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31장~33장에서 너무나 놀라운 회복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 주십니다.

그 내용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하나님은 모세 시대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면서 하나님과 계약을 맺었다는 것입니다. 즉, 율법의 말씀을 지키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율법의 말씀을 어기면, 자녀 관계가 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다른 신들에게 기웃거리고 하나님의 율법을 어겨서 결국 그 계약이 깨어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아버지, 자녀 관계가 깨어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지금과 같은 고난이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랑과 인자가 많으신 하나님께서 새로운 계약을 하나님 쪽에서 다시 맺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이 바로 예레미야 31:31-34에 나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 새 언약은 용서의 언약입니다. 죄를 용서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인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사람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시겠다는 놀라운 구원의 언약입니다. 31장 34절에 보면.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이 언약은 예언입니다. 이 예언이 언제 성취됩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실 때 성취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22장 20절에 보면,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예레미야가 예언한 새 언약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희망이 없는 상황에서 이러한 메시지를 하나님께 받으니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희망의 클라이막스를 말씀하고 계십니까?

그 내용은 무엇입니까? 일을 행하시고, 계획하시고, 이끄시고, 성취하시는 모든 능력과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고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잘 생각해보세요. 세상 모든 만물을 누가 만들었습니까? 하나님이 만드셨지요..그러니까 모든 만물의 주권은 누구에게 있습니까? 하나님께 있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누가 이 모든 만물을 잘 압니까? 하나님께서 가장 잘 아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주관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가장 잘 아는 하나님, 우리의 미래를 아시는 그 하나님께 부르짖어 구하라는 것입니다. 부르짖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미래를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를 만드신 제작자이신 하나님은 아신다는 것입니다. 미래를 아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뿐 이십니다. 전도서 7:14에는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고 말씀하십니다. 장래일을 우리는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뭐 해야 합니까? 겸손하게 우리의 미래를 잘 아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간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부르짖어 기도하면, 언제나 능력이 나타납니다. 언제나 소망이 생깁니다. 지금 예레미야의 입장, 이스라엘의 현재 상황을 생각해보세요. 개인적으로도 감옥에 갇혀있고, 민족적으로도 망하기 일부 직전이고, 신앙적으로 보면 하나님께 벌을 받고 있는 한 마디로 희망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찾아볼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면, 회복시켜주시고,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시고, 큰 역사를 일으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놀라운 약속의 말씀을 지금 우리에게도 주셨습니다. 이 약속의 말씀을 굳게 붙잡고 목마른 사슴 시냇물을 찾아 헤매듯이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하는 여러분과 제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망합니다. 아멘...

김성중 목사

-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

- 기독교교육리더십연구소 소장

- 전국청소년수련회 강사

[출처] [Message] 기도시리즈13 _ 눈물의 기도|작성자 꿈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