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신저. 김성중 목사

히브리서 5장7-10절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편안한 순종이 아닌 엄청난 고난에 대한 순종이었습니다. 성부 하나님은 인류 구원의 뜻을 가지고 계셨기에 자신의 하나 밖에 없는 아들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입장에서 보면, 하늘 보좌를 다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셔야하기 때문에 너무나 힘든 결단입니다.

그렇게 되면, 100%의 인간으로 오시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이 느끼는 고통, 아픔, 감정 등을 다 느끼시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인간이 받는 유혹까지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4:15에는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고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기서 첫 번째 순종을 하신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늘의 모든 영광과 권위를 다 버리고 이 땅에 오시기로 결정하신 순종입니다. 하나님의 인류 구원계획에 순종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인류구원의 가능성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드디어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디에서 태어나셨지요? 왕궁도 아니요, 호텔도 아니요, 마굿간입니다. 아무리 찢어지게 가난해도 마굿간에서 태어난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마굿간을 너무 낭만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제가 아동부 시절에 교회 선생님이 그림 자료를 보여주셨는데, 따뜻한 짚이 깔려있고, 예쁜 송아지, 귀여운 양들이 있는 마굿간이었어요. 마굿간은 그런 낭만적인 곳이 아닙니다. 동물의 똥냄새가 진동하고, 예수님이 누우셨던 말구유에는 말의 똥과 침이 엉켜있는 그런 곳입니다. 가장 존귀하신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이 마굿간에서 태어나신 것입니다. 그분은 태어나실 때부터 고난을 작정하고 오신 것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고난에 대한 순종이 시작된 것입니다.

드디어 예수님은 약 서른 살에 공생애를 시작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유대 사회의 주류라고 할 수 있는 예루살렘 지역에서 사역을 하신 것이 아니라, 그 당시에 너무나도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집단으로 거주하고 있던 갈릴리 지방에 가셔서 병들고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집도 없고, 마차도 없고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재산 하나가 없었습니다. 마태복음 10:10에 보면,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 구절은 예수님 본인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 여행은 선교여행입니다. 예수님은 사역하시면서 여러 곳에 선교여행을 다니시면서 배낭 하나 없었고, 딱 옷 한 벌 입고, 사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8:20에 눈물 나는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머리 둘 곳조차 없으신 예수님의 삶,,,자발적인 가난의 삶, 못 먹고 헐벗는 삶, 얼마나 고달프셨겠습니까?

우리가 아는 예수님 사진인 금발에 하얀 옷을 입은 예수님의 사진을 이제 잊어버려야 합니다. 한 벌 옷 입고 어려운 사람들과 사신 예수님..집이 없으셨던 예수님이 옷을 제대로 빨 수나 있으셨겠습니까? 옷은 다 떨어지고 헤어지고, 하도 안 빨아서 옷이 검정 옷이 되어있었을지 모릅니다. 집이 없으신데 제대로 씻기나 하셨겠습니까? 그래서 이사야 53장 2절에서 예수님의 모습에 대해서 이사야 선지자는 “그는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고 예언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역하실 때는 예수님의 가족들이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이상하게 보았습니다. 마가복음 3:21에는 “예수의 친족들이 듣고 그를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고 나옵니다. 자기 가족에게 미움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입니까? 예수님은 인간관계가 끊어지는 고난까지도 겪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역을 다 마치시고 잡히셔서 재판을 받으시고, 채찍으로 맞으셨습니다. 로마 군인들은 기둥에 예수님을 묶어놓고 채찍으로 때렸습니다. 채찍의 구조를 살펴보면 채찍이라기보다는 살인무기입니다. 이 채찍에 맞은 예수님은 과다출혈로 기진맥진하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들고 가시다가 쓰러지셔서 구레네 시몬이 대신 메고 간 것입니다.

골고다 언덕에 오르신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예수님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느끼며 약 6시간 동안 십자가에 달려 있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죽음까지도 최고의 고통스러운 고난으로 경험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예수님은 고난으로부터 시작한 인생, 고난으로 마치게 됩니다. 우리 예수님은 이 모진 고난을 받으실 것을 하늘에서 내려오실 때부터 알고 계셨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구원을 이루신 것입니다.

그럼, 그 예수님은 그 모진 인생의 고난을 어떻게 이기실 수 있었습니까?

그 답은 바로 7절에 나옵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고난을 이겨낸 비결은 통곡과 눈물의 기도였습니다.

우리 예수님의 기도는 믿음을 가진 눈물의 기도였습니다. 어떤 믿음입니까? 바로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은 하나님께 눈물의 기도를 올려 드렸습니다. 간절함이 담긴 애절한 기도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22장 44절을 보면,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고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 때의 장면이 나와 있습니다.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시면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었겠습니까? 그 구절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진짜 피를 흘리신 것도 됩니다. 어떤 의학자는 이것을 이렇게 의학적으로 설명했습니다. 의학적 용어로 이것은 ‘혈한증’이라고 하는데, 엄청나게 집중하고, 열을 내고 소리 내면 땀샘에 있는 땀이 피와 함께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 기도 때문에 예수님은 고난에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예수님께 순종하면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예수님의 복음대로, 예수님의 희생과 손해의 삶대로 따라 살면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델이십니다. 예수님께 순종하는 자에게 예수님은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처럼 형식적인 기도가 아닌, 간절함의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는 힘은 기도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간절함의 기도를 통해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집중하게 됩니다. 간절함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는 성령님의 힘을 공급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에 고난으로 순종하신 예수님의 삶을 본받아 살고, 간절히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망합니다. 아멘.

김성중 목사

-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

- 기독교교육리더십연구소 소장

- 전국청소년수련회 강사

[출처] [Message] 예수님의 순종|작성자 꿈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