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신저. 김성중 목사

호세아 13장4-6절

오늘 본문이 있는 호세아 13장은 북이스라엘에 대한 무서운 심판이 선포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말씀에서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서운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서 호세아 선지자가 설명하고 있습니다. 본문 4절에서 6절까지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간략하게 언급하면서 이스라엘의 영적 타락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창세기에서 요셉이 이집트의 총리가 된 이후에 요셉의 아버지였던 야곱의 가족 칠십 명은 이집트로 이주하게 됩니다. 출애굽기 1장 7절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이집트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 이집트를 다스리게 되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수가 많아지고 강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노예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집트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호세아 13장 4절에 말씀하십니다. “애굽 땅에 있을 때부터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나 밖에 네가 다른 신을 알지 말 것이라. 나 외에는 구원자가 없느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힘든 노예 생활을 하는 그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 고난과 시련 속에서 하나님만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시고, 하나님만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할 분이심을 알기를 원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에서 하나님만 의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집트 땅에서 이스라엘은 노예로 살면서 고난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의 고통의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출애굽기 3장 7절에 보면,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출애굽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출애굽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살게 됩니다. 광야 마른 땅에서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을 찾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광야는 한낮의 기온이 평균 섭씨 40~50도에 이르며, 밤에는 기온이 뚝 떨어져서 인간이 적응하기에는 거의 불가능한 상태인 곳입니다. 이뿐만이 아니라 맹수와 독충들이 활동하고 있는 곳이 광야입니다. 더 문제는 먹을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라는 먹을 것을 매일 제공해주셨고,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더위를 막아주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추위와 맹수들의 공격을 막아 주셨습니다. 신명기 8장 4절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가장 힘든 광야 생활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으셨습니다. 본문 5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내가 광야 마른 땅에서 너를 알았거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알았거늘”은 “알다”라는 단어에서 나왔습니다. “알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야다”입니다. 이 단어는 가장 가까운 부부 사이에서 사용하던 가장 깊은 관계 속에서의 앎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가장 살기 힘든 마른 광야에서 친밀한 관계를 나누시며 이스라엘 백성들과 교제하셨고, 아버지의 마음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알려주시며 훈육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가나안 땅에서 정착 생활이 시작되었고 농사를 짓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안정적인 삶이 시작되었고, 풍요롭고 배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본문 6절의 말씀처럼 마음이 교만하여졌습니다. 마음이 교만해지니까 자기 멋대로 행동하고 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바알 신에게 기웃거리게 되었습니다.

고대 근동 지방에서 유행했던 바알 신앙에서 바알은 농사를 주관하며 비바람을 주관하고, 항해를 할 때 배를 안전하게 지켜줄 폭풍의 신으로 이해되었습니다. 바알의 부인이었던 아세라는 여신으로 풍요의 신으로 이해되었습니다. 남자신과 여자신이 결합해야 비가 내리고 농사가 잘된다고 믿었기 때문에 바알 신앙을 가지고 있는 자들은 그들의 신처럼 신전에서 음행하는 일이 하나의 의식처럼 행해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세속과 쾌락의 상징이었던 바알 신에 빠진 영적인 타락 때문에 북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벌을 받고 망하게 되었습니다. 호세아 13장 1절 보면, “에브라임이 말을 하면 사람들이 떨었도다 그가 이스라엘 중에서 자기를 높이더니 바알로 말미암아 범죄하므로 망하였거늘” 이라고 나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다름 아닌 우리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힘들고 어렵고 배고플 때는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만 의지하게 됩니다. “고난도 축복”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고난 중에는 하나님 밖에 의지할 분이 없기 때문에 축복인 것입니다. 그러다가 돈도 생기고, 가진 게 많아지고, 내 배가 부르고 편안해지면 마음이 교만하게 됩니다.

여러분! 교만이 무엇입니까? 가진 것을 자랑하는 게 교만입니까? 기독교에서 말하는 교만은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하나님 위치에 올라가서 하나님이 내 삶에 필요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 바로 교만입니다. 창세기 3장 5절에서 뱀이 하와에게 선악과를 따 먹으라고 다음과 같이 유혹합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된다.” 세속의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내 인생에서 하나님이 필요 없게 되고, 내 인생의 주인은 바로 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교만입니다. 이 교만함이 들게 되면 내 눈이 보기에 좋은 대로 보고 행동하게 되어 있습니다. 바알신앙의 현대적 재현인 세속주의, 쾌락주의, 맘몬주의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러한 우리의 본성에서 벗어나는 길은 첫째, 언제나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우리의 본성은 힘들 때, 어려울 때, 배고플 때 하나님을 찾게 되어 있습니다. 좋은 신앙은 언제나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성적이 올라서 기쁠 때도 하나님 찾고, 기분 좋을 때도 하나님 찾고, 되는 일이 하나도 안 되어 낙심이 될 때도 하나님 찾고, 괴로울 때도 하나님 찾고, 아무 일 없을 때도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5장 16-18절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신앙생활의 모습을 보여주는 구절입니다. 여기서 “항상, 쉬지 말고, 범사”는 “언제나”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을 찾고 언제나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을 찾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둘째, 내가 가진 것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청지기 의식을 가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타락하게 된 것은 배불렀기 때문입니다. 배불렀다는 것을 느끼는 것의 은유적 의미는 내가 가진 것은 내 것이라고 느끼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것은 내 것이라고 느끼고 그 가진 것에 집중한 순간 사람은 타락하게 되어 있습니다. 자신이 가진 것에 집중하게 되면 사람은 마음이 높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닌 자신이 가진 것을 붙잡고 사는 교만한 삶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진 것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하라고 맡기셨다는 청지기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이러한 청지기 의식을 평생 가지고 살고 사역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언제나 하나님만 바라보고 찾고 의지하고, 청지기 의식으로 평생 살아가는 하나님의 일군들이 되시기를 주님으로 간절히 소망합니다. 아멘.

김성중 목사

-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

- 기독교교육리더십연구소 소장

- 전국청소년수련회 강사

[출처] [Message] 하나님만 바라보라!|작성자 꿈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