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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sage]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사람(21) 아리마대 사람 요셉

작성자
기독교교육리더십연구소
작성일
2024-03-07 12:36
조회
8

메신저. 김성중 목사

누가복음 23장50~54절

우리가 존경하는 인물 중에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분은 1950~60년대 미국의 흑인 인권의 회복과 보장을 위해 노력하셨던 분, 지금도 미국인들이 최고로 존경하는 목사님이십니다. 루터 킹 목사님은 흑인을 핍박하는 백인들을 증오하거나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흑인운동도 흑인만 권리를 찾고자 하는 마음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백인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품고 백인과 흑인이 함께 평화를 이루고 사는 것이 그분의 비전이었습니다. 그는 흑인인권운동을 할 때도 철저한 비폭력평화주의를 외치고, 실천했습니다. 결국 그분은 전혀 무장을 하지 않았기에 반대파의 총에 맞아 돌아가셨지만, 그분의 용감한 모습, 진정한 사랑의 모습, 평화주의의 실천은 전 미국인들의 가슴을 울렸고, 백인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루터 킹 목사님처럼 진정한 용기를 가진 한 사람이 나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요셉입니다. 이 요셉은 구약에 나오는 야곱의 아들이 아닙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도 아닙니다.

 

이 요셉은 아리마대라는 동네 출신의 유대 공회 의원이었습니다. 그 당시 공회의원은 정치가와 판사의 역할을 했습니다. 공회는 산헤드린이라고도 불렸는데, 공회의원 70명으로 구성되어 있고, 대제사장이 공회의장입니다. 여기서는 갖가지 민사, 형사 사건을 처리했습니다. 공회에서는 다수결의 원칙에 의해서 의사를 결정했습니다. 여기서 모든 재판을 하고, 형벌을 정할 수 있었으나, 단 하나 사형의결권은 없었습니다. 왜냐면 그 당시에 유대는 로마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유대 자치기구인 공회는 인정하고, 공회가 알아서 재판하도록 로마가 허락했지만, 사형판결과 집행의 권한은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먼저 공회에 끌려가서 재판을 받으셨습니다. 거기서 공회의원들은 뭐라고 하지요. 사형을 시켜야 한다고요. 그런데 공회에서는 사형판결, 집행권이 없으니까 공회에서 그 당시 유대에 와 있던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보낸 것입니다. 그래서 빌라도가 사형을 언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의 인물이었던 요셉도 유대 공회의원 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잘 나가던 엘리트 정치가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재판에도 참여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선하신 분이고,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모든 공회원이 예수님을 죽이라고 했을 때 그 의견에 적극적으로 반대했던 사람이었습니다. 51절에 보면 “그들의 결의와 행사에 찬성하지 아니한 자라.”고 나와 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대다수가 예수님을 사형시켜야 한다고 외칠 때, 혼자만 반대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겠습니까? 대다수의 공회원들에게 욕 먹었겠지요...미움을 받았겠지요...너도 예수 믿는 놈이냐는 비판과 손가락질을 받았겠지요... 그러나 그는 정의가 무엇인지를 알았기에 그 정의의 편에 서기 위해 용감한 행동을 한 것입니다.

 

용감한 행동이 여기에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그는 총독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당돌히 말했습니다. 마가복음 15:43에 보면 요셉이 빌라도에게 당돌히 들어가서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말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상상해보세요, 그때 예수님은 사형수로서 돌아가신 분입니다. 그 당시에 십자가형으로 죽은 사람들의 시체는 산에 버려졌습니다. 가족들이나 아는 사람들도 그 시체를 거두어가기 힘들었습니다. 왜냐면 사람들의 시선이 무서웠기 때문입니다. 극형에 처해서 죽은 사람의 시체를 수습하는 것을 누군가가 보고 소문을 내면, 자신은 완전히 왕따가 되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완전 엘리트에 잘 나가는 정치가였습니다. 그런 그가 왕따 당할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빌라도에게 그것도 당돌히 가서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 시켜서 몰래 한 것도 아닙니다. 세상에 알려질 것을 알면서도 당당히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한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시체를 받아서 세마포로 싸고 자신이 사 두었던 최고 좋은 무덤에 예수님을 장사했습니다. 그 당시에 돌로 막을 수 있는 무덤은 최고 부자나 사회저명인사가 아니고서는 가질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 당시에 사형수로 돌아가신 예수님이 요셉의 헌신과 용기로 말미암아 최고의 무덤에 장사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그 요셉의 무덤에서 예수님의 부활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 요셉의 무덤이 가장 영광스러운 장소가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요셉의 모습을 보면서 여러분은 어떠한 생각이 듭니까? 용감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결심이 듭니까?

 

오늘 요셉의 모습을 보면서 어떠한 사람이 진정으로 용감한 사람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첫째, 선함과 정의로움을 함께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 50절을 보면, 요셉에 대해 선하고 의로운 사람이라고 소개합니다.

 

여러분, 선함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한 정의로움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선함과 정의로움을 동시에 가지기는 쉽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학창시절을 생각해보십시오. 친구들끼리 싸우는데, 조용하고 착하고 선한 아이가 적극적으로 말리는 것을 보았습니까? 거의 보기 힘듭니다. 선함과 정의로움을 함께 가지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를 다 가져야지 진정으로 용감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편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용감한 사람은 외적으로 나오는 물리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연상합니다. 그러나 용감한 사람은 물리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용감한 사람은 착한 사람입니다. 남을 배려하는 사람입니다. 루터킹 목사님처럼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평화주의자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정의에 불타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착한 사람의 이야기는 듣습니다. 그리고 착하고, 선한 사람은 인정합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입니다. 그 착한 사람이 정의로운 이야기나 정의로운 행동을 할 때 주위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이 선하고, 착한 사람이 되어 정의롭게 행동하면, 주위 사람들은 여러분을 인정하고, 여러분의 편이 되어 줄 것입니다.

 

선함과 정의로움의 두 축을 갖출 때 진정으로 용감한 사람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의 통치를 항상 기대하는 사람입니다.

 

본문 51절을 보면, 요셉이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은 하나님의 통치를 기다리고, 소망하는 사람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나를 이끄시며, 인도하심을 소망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통치하시며, 인도해주심을 기대하고, 신뢰하는 사람은 비겁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진정한 용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성경적인 용어로 담대함입니다. 히10:35에 다음과 같이 나와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담대함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조금한 일에 넘어지고, 좌절하고, 우울하고, 감정에 휘둘리고, 나약해져서는 안 됩니다. 성경에서는 계속 우리 내면이 강해질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신 31:6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행하실 것임이라 반드시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라 하고” 이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행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신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내적으로 강해지십시오. 용감해지십시오. 조금한 일에 좌절하거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마음을 강하게 먹고, 삶의 의욕을 되찾으십시오. 자신 안에 의지를 불어넣으십시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마음을 강하게 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셋째, 남의 눈치보다 나의 확신을 신뢰하는 사람입니다.

 

용감하지 못한 사람의 특징은 남의 눈치를 너무 많이 본다는 것입니다. 남의 눈치를 적당히 볼 수는 있어야 하지만, 그것이 나의 삶의 자세나 판단의 가치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면 안 됩니다.

 

오늘 요셉이 남의 눈치, 남의 시선이 가치판단에 절대적 영향을 미쳤다면, 예수님 재판 때 옳은 소리를 낼 수 없었을 것이며,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빌라도에게 감히 갈 수도 없었을 것이며, 예수님을 자신이 산 무덤에 모시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신앙에서 오는 확신을 신뢰하십시오. 그리고 그 확신대로 나아가십시오. 제일 좋은 것은 그 확신으로 다른 사람들까지 설득하는 것입니다. 독불장군처럼 나아가서 왕따가 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확신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고, 다른 사람들까지 설득할 수 있으면 가장 좋은 것입니다.

 

남의 시선, 남의 눈치 너무 보면, 스트레스 엄청 받습니다. 그렇게 되면, 자신이 주체성 있게 무언가를 결정하기가 매우 어렵게 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신앙의 확신 속에서 일을 추진해 나가고, 정의로운 모습을 보여주십시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최고의 엘리트이지만, 착한 모습 속에, 정의로운 행동을 보여준 용감한 사람 요셉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진정으로 용감한 사람이 되기 위해 선함과 정의로움을 동시에 갖추기 위해 노력합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를 다스리고, 인도하심을 기다리고, 기대하며, 믿읍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시선과 눈치보다 신앙에서 오는 확신을 더 신뢰합시다!! 그리고 그 확신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서 다른 사람까지도 설득시킬 수 있는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됩시다!!

김성중 목사

-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

- 기독교교육리더십연구소 소장

- 전국청소년수련회 강사

[출처] [Message]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사람(21) 아리마대 사람 요셉|작성자 꿈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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