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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sage] 팔복8 -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

작성자
기독교교육리더십연구소
작성일
2024-03-07 12:12
조회
7

메신저. 김성중 목사

마태복음 5:10~12

오늘 본문에서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다고 나옵니다.” 의를 위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박해를 받고 고난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럼, “의를 위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다른 사람에게 의가 들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즉,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서 죄가 없는 의인의 상태로 만들어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11절에 나옵니다. 예수님 전하다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욕을 당하고 박해 당하고, 중상모략의 말을 듣고, 악하고 험한 말을 듣는 것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손해를 보고, 희생을 당하는 것입니다‘ 즉, 다른 사람에게 예수님의 복음을 전해서 의인이 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데 핍박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이 쓰여 질 때는 로마가 기독교를 박해하던 시대였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전파하면 감옥에 가고, 사자의 밥이 되고, 불에 태워지는 화형에 처해지던 시대였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의미는 죽는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죽음이라는 고난을 무릅쓰고 예수님을 믿고 전했습니다.

 

고난의 역사는 로마시대에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선교의 역사를 보면, 계속 고난의 역사가 이루어져왔습니다. 우리나라에 복음이 처음 들어올 때도 엄청난 고난과 박해를 받았고, 지금도 많은 지역과 나라에서 선교사님들이 고난을 받고 있습니다. 죽음까지도 두려워하지 않고 믿음으로 고난까지도 이겨내야 기독교가 전파됩니다. 그리고 기독교가 인정받게 됩니다. 기독교는 이와 같은 희생과 고난의 역사 속에서 이루어져 왔고, 인정받아 왔습니다.

 

신학자 터둘리안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순교는 교회의 씨앗이다. 순교의 역사는 교회의 역사다!!" 희생과 고난의 역사가 기독교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희생과 고난을 감수해야 복음이 전파되고, 기독교가 인정받는 사회가 온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따르는 복음의 주체이신 예수님도 그렇게 사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멋있게 누리면서, 왕 자리에 올라서 편안하게 복음을 전하신 것이 아닙니다. 평생 머리 둘 곳조차 없으실 정도로 힘든 고난을 겪으면서도 복음을 전하셨고,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고난과 희생을 겪으셨기에 예수님의 복음이 전파될 수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인정하게 되었고, 예수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주인 되시고 스승 되시는 예수님께서 그러한 방법을 사용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그렇게 따라가야 하는 것이고, 그리할 때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영국의 휘튼 대학교를 1949년에 졸업한 짐 엘리옷은 에콰도의 아우카 부족에게 선교하려다가 그들의 창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 선교사에게는 총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선교사에게는 호신상으로 권총을 주었는데, 그 권총이 한 발도 발사되지 않았음을 발견되었습니다. 인디언들이 창을 가지고 달려오는데, 사랑과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가 자기 신변의 안전과 안위 때문에 총을 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짐 엘리옷 순교 후 본국에서 기자회견이 열렸습니다. 엘리옷의 부인에게 기자들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남편의 죽음은 가장 큰 비극 (tragidy)입니다" 그러자 부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남편의 죽음은 가장 큰 비극(tragidy)이 아니라 가장 큰 영광(glory)입니다." 멋진 말이지요. 이 모습이 바로 고난을 감수하면까지 믿음을 지키고, 의를 위해 핍박을 받은 자의 모습입니다. 얼마 후 오카인디언들은 모두 예수님을 믿게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요한복음 12장 24절의 예수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오늘 본문에서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가 복이 있는 자요, 행복한 자라고 말합니다. 오늘은 팔복의 마지막 복입니다. 마지막이라는 것은 중요하다는 의미도 담겨있지만, 지키기 어렵다는 의미도 담겨져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부담이 되는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부담의 말씀을 지키면, 천국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토록 가고 싶은 하늘나라의 주인공이 되는 영광, 하늘나라에서 예수님께서 주시는 상을 받게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첫 번째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와 쌍을 이루면서 마지막 여덟 번째 복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로 복이 마치게 됩니다. 이것이 최고의 복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러한 박해와 고난은 어쩔 수 없이 다가오는 고난이 아닙니다. 자신이 예수님 때문에 자발적으로 그 고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헌신은 자발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참 좋은 시대에 좋은 나라에서 살고 있습니다. 편하게 어디에서나 예배드리고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고난이 없을수록 신앙은 약해진다는 것입니다. 고난이 올 때, 위기가 올 때, 어려움이 올 때 예수님을 찾고, 신앙이 강화되지, 편안함이 있고, 안정이 오면 신앙도 약화됩니다. 안타까운 딜레마입니다. 이런 딜레마에서 빠져 나오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희망이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주위 사람들부터 예수님을 전하는 삶을 살아가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소개하고,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게 위해 손해 보는 삶을 살아가기 바랍니다. 목숨을 내어 놓을 정도의 핍박은 없겠지만, 손해를 감수해야 할 일은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전하려면 내가 잘 살아야 합니다. 내가 양보해야 하고, 내가 다른 사람에게 잘 해 줘야 합니다.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들어줄 시간도 내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전하는 나를 손가락질하고, 욕해도 웃어넘겨야 합니다. 이것은 희생이고, 손해입니다. 예수님을 위해 손해, 핍박, 희생을 자청하십시오. 그리고 믿음으로 이겨내십시오. 그 때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며, 우리도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선배들이 그랬습니다. 목숨을 내어놓으면서도 예수님을 위해 핍박과 희생을 받았습니다. 12절에 보면, 선배 선지자들도 다 핍박과 희생을 받았다고 나옵니다. 우리도 그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잡초는 어떤 조건과 환경에서도 잘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잡초의 신앙, 강인한 신앙, 예수님을 위해 핍박과 희생, 손해를 자청하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그 때 예수님은 놀라운 복을 약속해 주십니다. "천국이 너희 것이라,,,,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하늘의 상을 기대하고, 천국을 기대하며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의를 전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핍박과 고난을 자청하며 믿음으로 예수님을 위해 핍박과 손해를 이겨내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망합니다.

 

아멘.

김성중 목사

-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

- 기독교교육리더십연구소 소장

- 전국청소년수련회 강사

경복궁 팔우정과 집옥채 그리고, 협길당

[출처] [Message] 팔복8 -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작성자 꿈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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