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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sage] 팔복5 - 긍휼히 여기는 자

작성자
기독교교육리더십연구소
작성일
2024-03-07 12:07
조회
8

메신저. 김성중 목사

마태복음 5:7

“긍휼이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긍휼 받기를 원하니? 그럼, 네가 먼저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행동에 대한 강조인 것입니다. 그리고 긍휼히 여기면 하나님께서 너를 긍휼히 여기시는 보상을 베풀어주신다는 것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것의 의미는 “불쌍히 여기는 하나님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용서해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는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교만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너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용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로마서 3:23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모든 사람이 죄인인 것입니다. 마태복음 7:3-4에 보면, 용서하지 못하는 인간의 심리를 비유적으로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십니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내 눈 속에는 들보가 있습니다. 들보는 널빤지입니다. 내 눈에는 널빤지와 같이 큰 죄가 있는데, 그것은 못 보고, 다른 사람의 눈 속에 있는 작은 먼지는 보이고 빼라고 지적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입니다.

우리는 다 이기주의에 빠져 있습니다. 이기주의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나만 옳다는 것입니다. 상대방은 틀리다는 것입니다. 이 이기주의는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었던 첫 번째 범죄 사건을 통해서 우리 인간에게 들어 왔습니다. 선악과를 따 먹은 후에 하나님은 아담에게 나타나셔서 죄를 물으십니다. 그랬더니 아담은 잘못했다고 전혀 회개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저 여자, 즉 하와 때문에 죄를 범했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이기주의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하와에게 죄를 물으시니까 하와 역시 죄를 회개하기는커녕, 뱀이 줘서 먹었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이기주의입니다. 자신은 아무 문제없고 상대방이 문제가 있다는 것이 이기주의입니다. 그래서 모든 죄의 출발은 이기주의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예수님의 사역을 머리로서만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 압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모든 사람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그 진리를 머리로서만 알고 있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자신의 삶에서 우러나오는 고백이 아니라 머리로서만 알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얼마나 크나큰 죄인인 줄 알며, 자신의 죄를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사실을 가슴으로 믿으면 다른 사람을 용서 못할 일이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과 율법학자를 비판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용서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죄를 용서하셨다는 것을 마음으로 믿는다면 그 큰 죄도 용서해주셨는데, 다른 사람의 죄를 왜 못 용서해주겠는가 라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의 죄를 용서하셨다는 것을 마음으로 믿지 못하면 우월감에 빠져서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정죄하게 됩니다.

그럼,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고, 긍휼을 베풀기 위해 구체적인 삶의 적용점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고 긍휼을 베풀기 위해서는

첫째,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끊임없이 묵상해야 합니다. 묵상은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나의 죄 때문 이라는 것을 깊이 있게 묵상하면, 우리들 마음이 허물어집니다. “나 같은 죄인한테 이러한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시다니...” 깨닫게 됩니다. 이러한 마음 상태가 되면 다른 사람의 죄는 별 것 아닌 것이 됩니다. 용서하게 됩니다.

마태복음 18장에 보면, 용서할 줄 모르는 종에 대한 비유가 나옵니다. 어떤 임금이 만 달란트 빚진 자의 빚을 탕감해 주었습니다. 달란트는 예수 당시의 유대와 로마 사회에서 통용되던 화폐 단위 중 가장 큰 것으로서(무게 단위로는 약 34kg의 순금에 해당함) 1달란트는 노동자 한 사람의 일일 품삯인 1데나리온의 약 6000배에 상당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빚진 자가 백 데나리온 빚진 자에게 빚을 갚으라고 재촉하고 안 갚으니까 옥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백 데나리온은 1백 데나리온은 1만달란트에 60만분의 1에 불과한, 참으로 계산할 가치조차 없는 미미한 소액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안 임금은 18장 33절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이 비유의 결론입니다. 18장 35절입니다.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예수님은 만 달란트나 되는 갚을 수 없는 값을 탕감해주시고, 용서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백 데나리온 밖에 안 되는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하지 않아서야 되겠습니까? 용서해야 합니다.

둘째, 나도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겸손함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은 다른 사람의 실수를 들었다고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 사람을 싸 잡아서 같이 욕하겠습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가져할 자세는 “나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는 겸손함입니다. 그럴 때 다른 사람을 용납할 수 있는 마음이 생겨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8장에 간음한 여자를 사람들이 돌을 치려 할 때, 예수님께서 “죄 없는 자가 돌로 먼저 치라!” 고 했을 때, 던지지 못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도 그럴 수 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자각했기 때문입니다. 큰소리치는 그 사람이 넘어질 확률이 더 큰 것입니다.

우리 어른들은 운전할 때 그런 경험을 많이 합니다. 앞의 차가 실수하면 화를 내면서 창문을 내리고 욕을 해 댑니다. 자신은 전혀 그러지 않은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다음 날 우리는 우리에게 욕먹은 사람이 했던 것과 같은 똑같은 행동을 합니다. 우리도 똑같은 실수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도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죄성을 지닌 존재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죄성의 본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흙탕물을 두면 깨끗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물이 진짜 깨끗합니까? 안 그렇습니다. 흔들면 도로 다시 흙탕물일 뿐, 깨끗한 물이 아닙니다.

우리 함께 다른 사람에게 긍휼을 베푸는 사람이 됩시다! 즉,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용서하는 삶을 삽시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십니다. 우리의 죄를 다 용서해주시고,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으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김성중 목사

-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

- 기독교교육리더십연구소 소장

- 전국청소년수련회 강사

상암 월드컵경기장 억새축제 야간개장(10.18~24)

[출처] [Message] 팔복5 - 긍휼히 여기는 자|작성자 꿈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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