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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sage] 팔복 3 - 온유한 자

작성자
기독교교육리더십연구소
작성일
2024-03-07 12:06
조회
8

메신저. 김성중 목사

마태복음 5장 5절

여러분은 온유합니까? "온유한"이라는 헬라어 형용사는 "프라에이스"입니다. 이 말은 "얌전한" "친절한" "너그러운"이라는 뜻입니다. 영어성경에서 온유함은 meek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meek이라는 단어를 쉽게 번역하면 "순함"이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온유함의 뜻입니다.

다음으로 머리 아프지만 히브리어로도 살펴봅시다. 성경은 한글이 원문이 아니기 때문에 원어를 보아야 합니다. 히브리어는 “아나우”입니다. 이 온유함의 원어적인 의미는 자신의 존재가 자신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을 아는 겸손함을 의미합니다. 그 깨달음을 가지고 있는 자이기에 모든 사람에게 친절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바로 “온유함”입니다.

그럼, 온유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 은혜 받아서 겸손해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온유한 자입니다. 마11:29에는 다음과 같이 나와 있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예수님은 가장 온유하신 분이십니다. 이 구절에서 온유와 겸손은 같은 품성에 속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온유한 자는 겸손한 자이고, 겸손한 자는 온유한 자입니다.

빌립보서 2장 5-8을 보면 우리 예수님께서 얼마나 온유하고 겸손한지를 알 수 있는 구절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로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인간의 모양으로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하게 하나님께 복종하셔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입니다. 그것도 분노로서가 아니라, 사랑으로서 말입니다.

이와 같은 온유와 겸손을 갖기 위해서는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은혜의 원천이십니다. 예수님을 통해 은혜를 받습니다. 은혜를 받으면 겸손한 자가 됩니다. 겸손한 자가 되면 온유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은혜를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민수기 12:3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향해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고 나와 있습니다. 즉, 모세는 온유함이 세상의 모든 사람 중에 가장 뛰어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원래 모세는 온유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마음이 약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순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마음이 강팍했던 자입니다. 분노의 감정을 가지고 살았던 자입니다. 그러한 그가 미디안에서 40년동안 양 치는 일을 하면서 훈련을 받습니다. 말 안 듣는 양들을 치면서 말 안듣는 인간들을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출애굽기 3장에 호렙산에 가서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부터 그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적으로 경험하며, 마음이 부드러워집니다.

호렙산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집트로 가서 너의 민족을 이끌고 나오라"고 명령하셨을 때도, 말을 못한다고, 자신은 할 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거절합니다. 그 장면에서도 모세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경험해서 자신의 본래 강팍했던 모습이 깨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모세는 겸손해 진 것입니다. 진짜 모세가 그렇게 말 못할 정도로 용감하지 못한 자였을까요? 아니지요. 은혜를 받아 그의 굳어진 마음이 깨진 것입니다.

그 강팍했던 자가 순한 사람이 되어 이스라엘의 리더가 됩니다. 부드러운 마음이 있었기에 이스라엘 사람들의 원망과 불평도 받아줄 수 있었던 것이고, 자신을 비판하며 죽이려 하는 자도 진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홍해를 건너기 전에 홍해가 앞에 있다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세를 비판하고 죽이려 합니다. 홍해를 건너고 광야에 가서 먹을 것이 없고, 마실 물이 없다고 모세를 원망하며 돌을 던져 죽이려 합니다. 그럴 때, 모세가 흥분하고, 분노에 차서 그들에게 대응했다면 모세파와 모세 반대파가 나뉘어져 서로 싸우다가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에서 다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반대파도 받아들이고, 부드러운 모습을 보이니까 남자만 60만명 되고, 여자와 아이까지 합치면 200만이상 될 것이라고 추정되는 이스라엘 민족을 40년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처음 이집트 왕자였을 때 강했던 모습과는 너무나 상반됩니다. 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은혜를 받아서입니다.

야곱은 어떻습니까? 야곱은 원래 온유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지기 싫어하던 굉장한 승부욕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는 태어날 때도 형보다 빨리 나오고 싶어서 형의 발꿈치를 붙잡고 나온 사람입니다. 그는 형의 장자권이 탐이 나서 꾀를 부려서 팥죽 한 그릇에 형의 장자권을 뺏어 버립니다. 결국 아버지와 형을 속여 형이 받을 축복을 자신이 받아버립니다. 이랬던 그가 형의 미움을 받고 삼촌이 있는 곳으로 도망가다가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하나님의 사닥다리를 봅니다. 그 때 야곱은 변화됩니다. 그 변화된 모습이 무엇입니까? 삼촌 라반이 자신을 속여 자신이 사랑한 라헬을 처음에 아내로 받지 못해도 또 참아냅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14년을 일합니다. 그리고 그 사기꾼 삼촌 라반을 위해 더 일해 총 20년을 일합니다. 라반은 야곱에게 월급을 주지 않은 적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온유함으로 참아냅니다. 창세기 31장 41절에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내가 외삼촌의 집에 거한 이 이십 년에 외삼촌의 두 딸을 위하여 십사년, 외삼촌의 양 떼를 위하여 육년을 외삼촌을 봉사하였거니와 외삼촌께서 내 품값을 열 번이나 변역하셨으니” 야곱은 은혜 받아서 겸손해졌기 때문에 이러한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은혜를 받으면 사람이 변합니다. 모든 것을 부수고, 사람을 죽이던 사형수도 감옥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은혜를 받으면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부드러운 사람이 됩니다. 굳은 마음이 부드러운 마음으로 변합니다. 은혜가 충만하면 눈물도 많아집니다.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은혜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모세처럼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계신 자리가 바로 은혜의 자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디 계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은혜의 자리가 어디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있는 곳이 바로 은혜의 자리입니다. 쉽게 말하면, 예배드리는 자리가 은혜의 자리입니다. 예배에 목숨을 거십시오. 예배에 그냥 왔다가 그냥 가지 말고, 은혜 받고 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예배를 드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예배 가운데서 은혜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는 은혜의 자리입니다. 그러나 은혜의 자리라고 해서 누구나 은혜를 받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은혜를 받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은 졸기도 합니다. 그 차이는 바로 마음 문을 열었나, 그렇지 않은가의 차이입니다. 은혜를 받으려면, 은혜의 자리에 와서 마음 문을 열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문을 여십시오. 최대한 받아들이려는 자세로 말씀을 듣고, 찬양을 하십시오.

예전에 바닷가에 놀러가서 튜브를 타고 파도타기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파도가 높은 것이 오면 두렵기 때문에 온 몸에 힘을 줍니다. 긴장을 합니다. 파도를 바라보면서 파도를 맞으면 십중팔구 튜브가 뒤집어집니다. 그러나 파도를 등지고, 긴장하지 않고, 파도를 맞이하면 자연스럽게 파도를 탈 수 있습니다. 그냥 파도가 가는 방향에 내 몸을 내어맡기면 됩니다. 그러면 파도타기를 통해 즐거움을 느끼게 되고, 만족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은혜받는 방법도 마찬가지입니다. 긴장하거나 파도를 맞서는 것처럼 말씀에 맞서거나 삐딱하게 바라보지 않고, 자연스럽게 파도가 가는 방향에 내어 맡기는 것처럼 말씀에 순응하면 파도타기의 즐거움을 느끼는 것처럼 말씀의 즐거움, 예배의 즐거움을 느낍니다. 즉, 은혜를 받게 됩니다. 은혜의 자리로 나아가십시오. 은혜를 받고, 부드러운 마음을 가지십시오. 약한 마음을 가지십시오. 온유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둘째, 복수심을 품지 않고, 용서하는 용감한 결단을 해야 합니다.

요셉, 다윗, 모세, 야곱 등과 같이 위대한 성경의 인물들의 특징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속된 말로 누군가에게 억울함을 당했지만, 복수심을 품지 않고, 복수하지도 않고 용서하는 사람입니다. 신기합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에게 억울함을 당해서 감옥에 갔지만, 나중에 총리가 되고 나서 절대로 복수하지 않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찾아내서 복수에 복수를 했을텐데 절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다윗은 잘 났다는 이유로 사울왕의 미움을 사서 억울하게 죽을 고생하면서 도망자로 힘들게 살아갔습니다. 나중에 왕이 된 다윗은 사울과 관계되는 사람을 다 죽일 수 있었으나 용서합니다. 그리고 사울왕이 전쟁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슬픔을 애도하며 시까지 씁니다. 모세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억울하게 죽임을 당할 수 있었으나 분노의 감정을 품지 않고 다 받아줍니다. 야곱도 자신의 장인 라반이 자신이 일한만큼 재산도 주지 않고, 부려먹으나 다 용서합니다.

여러분, 성경의 인물들의 특징입니다. 복수심을 품지 않습니다. 그리고 용서합니다.

우리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23절을 보면 눈물나는 구절이 있습니다.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욕을 당하나 맞대어 사람들에게 욕하지 아니하시고 용서하신 분이 우리 예수님이시고, 고난을 당하시나 사람들을 위협하시지 않고 사랑으로 품어주신 분이십니다.

용서는 나약한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용감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가장 큰 용기는 용서하는 용기입니다. 인간의 본성은 억울한 일을 당하면 복수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복수하지 않고 용서한다는 것은 내 안에서 내 본성을 뛰어넘는 엄청난 용기가 있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온유한 사람은 비리비리하게 약한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내면이 아주 강하고 용감한 사람인 것입니다. 진짜 용감한 사람은 겉으로 폭력적이고 거들먹거리는 사람이 아니라, 분노를 품지 않고 용서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역사적 인물 가운데 가장 용감한 사람으로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을 꼽습니다. 그는 여러분이 잘 아는 것처럼 흑인 인권을 위해 비폭력 평화운동을 전개하다가 반대파의 총에 의해 돌아가신 분이십니다. 그는 폭력 운동이 아닌 비폭력 평화운동을 전개했습니다. 백인들을 싫어하고, 반대한 것이 아니라, 백인을 사랑하며 백인과 흑인 더 나아가 소수민족계인 히스패닉, 아시아인도 차별받지 않고 함께 잘 사는 꿈을 꾸신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좀 억울한 일을 당하면 복수심을 가집니다. 언젠가 꼭 복수해야겠다는 무서운 마음을 품습니다. 그 마음을 품게 되면 바로 마음은 굳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생명력을 잃습니다. 온유한 마음은 사라지고 강팍해지고 얼굴에서 웃음이 없어지며, 난폭한 사람이 됩니다.

복수심이 들 때,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성경의 인물들을 생각해내십시오. 그리고 자신에게 해를 준 사람에게 복수하지 말고, 용서해주고, 안아 주십시오. 그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마태복음 6:14~15에 무서운 말씀이 나옵니다.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셋째, 분노의 감정을 참아내고,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감정대로 살아가면 실수를 저지릅니다. 감정대로 살아가면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인격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열 받는 감정이 치밀어 오른다고 분노의 감정을 표시하고,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하면 그 사람은 온유한 사람이 아닌 강팍한 사람입니다.

이성이 감정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분노의 감정을 이성으로, 신앙으로 조절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분노의 감정이 올 때, 힘들겠지만, 예수님의 얼굴을 떠올리십시오. 나의 무서운 죄를 위해 돌아가신 그분, 나에게 분노의 감정을 표시하지 않고, 십자가를 지신 그분을 떠올리십시오.

분노의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 없어진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분노의 감정을 표시한 결과를 상상해 보십시오. 절대 좋은 일이 없을 것입니다.

분노의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 변합니다. 잊지 마십시오. 참아내면 됩니다. 참지 못하면 무서운 결과를 초래합니다. 온유한 자도 못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는 분노의 감정대로 살아가면 안 되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억울함을 다 갚아주시겠지 하는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로마서 12:19에는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고 나와 있습니다. 억울하면 하나님께서 다 갚아주십니다. 다윗도 사울에게 쫓길 때 묵묵히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사울왕을 죽일 수 있는 기회였음에도 불구하고 죽이지 않습니다. 분노의 감정대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맡긴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그저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 포악한 자가 많다고 분노의 감정으로 하나님께 원망한 하박국 선지자에게 하나님은 바벨론을 보내셔서 이들에게 벌을 내리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하박국은 바벨론이 더 나쁜데, 어떻게 바벨론이 이스라엘을 위한 심판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겠냐고 하나님께 물어봅니다. 그 때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오직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 가지고 살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해할 수 없어도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창세기 26장에 보면 이삭의 온유함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지역은 물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양과 소가 먹고 살려면 물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광야지역은 물이 없습니다. 그래서 양과 소를 끌고 다니며 물이 있는 곳을 찾아 떠납니다. 돈이 있는 사람은 우물을 팝니다. 우물 발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쉽게 말하면 사막에 오하시스를 찾는 것입니다. 이삭은 처음에 우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발견한 우물이었습니다. 그런데 블레셋 사람들이 시기해서 그 우물을 메워 버리고 떠나라고 말합니다. 그 때 여러분 같으면 어떡하겠습니까? 분노의 감정을 참아내고 다른 곳으로 갑니다. 다른 곳에 가서 또 열심히 우물을 발견해서 우물을 팝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그랄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괴롭힙니다. 이삭은 어떻게 할까요? 그 힘들게 판 우물을 양보하고 또 다른 곳으로 갑니다. 그리고 또 우물을 팝니다. 또 괴롭힙니다. 또 양보합니다. 분노의 감정을 참아내고 양보합니다. 결과는 어떻게 됩니까? 이삭의 이런 모습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어느날 밤에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창세기 26장 24-25절입니다.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 이삭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거기 장막을 쳤더니 이삭의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 하나님이 이삭에게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을 만난 자리에서 이삭의 종들이 우물을 팠더니 우물물이 나왔습니다. 분노의 감정을 참아내고 믿음으로 살아가면 결국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십니다.

넷째, 기꺼이 조연자의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온유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주연이 아니라 조연자의 역할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다 주연이 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조연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묵묵히 도와주고 세워줄 줄 알아야 합니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묵묵하게 다른 사람들을 서포터 해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 손이 모르게 하는 사람입니다.

영화를 보면 우리는 주연만 생각하고, 조연은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영화가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주연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조연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주연상보다 이제는 조연상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온유한 사람이 됩시다! 온유한 사람이 되면 영적인 풍요로움을 선물로 받게 됩니다. 온유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다른 사람에게 행복을 주는 청소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수련(깨끗한 마음)_양주천일홍축제

김성중 목사

-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

- 기독교교육리더십연구소 소장

- 전국청소년수련회 강사

[출처] [Message] 팔복3 - 온유한 자|작성자 꿈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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