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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sage] 팔복 1 –심령이 가난한 자

작성자
기독교교육리더십연구소
작성일
2024-03-07 12:02
조회
8
메신저. 김성중 목사

마태복음 5장1~3절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여러분은 행복한 신앙인이십니까? 여러분은 행복한 헌신자이십니까? 행복한 신앙인이 되어야 행복한 헌신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7장은 산상수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산 위에서 가르치신 교훈이라는 뜻입니다. 5장 1절을 보면,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라고 나와 있습니다. 이 곳은 학자들에 의하면 가버나움과 디베랴 사이의 한 언덕에서 가르치신 것으로 보여집니다. 예수님께서 입을 열어서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이 바로 본문 3절인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입니다. 정말 중요하기 때문에 제일 먼저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소위 "팔복"의 첫 번째 복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복이 있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마카이오이"는 "행복하다"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와 닿게 3절을 다시 표현하면 “심령이 가난한 자는 행복한 사람이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심령"은 헬라어로 “프뉴마” 인데, 헬라 문화권에서 이 “심령”은 사람의 인격, 생각, 의지, 감정의 중심을 가리킵니다. 그럼, "가난한 자"는 어떤 뜻일까요? 헬라어에서 "가난한 자"를 나타내는 단어에는 “프토코스”와 “페네스” 두 개가 있습니다. "프토코스"는 자기 힘으로는 살아갈 수 없고, 다른 사람이 도와주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극빈자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페네스"는 하루 벌어서 먹고 살아가는 어려운 노동자를 의미합니다. 경제적으로 어렵기는 하지만, 자기 스스로 근근히 살아갈 수 있는 가난함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온 "가난한 자"는 “페네스”가 아니라, “프토코스”입니다. 즉, 누군가가 도와주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극빈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심령이 가난한 자"는 하나님이 도와주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극빈자와 같은 상태가 내 삶의 중심에서 이루어지는 자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으면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하나님이 도와주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내 모든 상태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자! 그럼,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보세요. “나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도와주셔야만 살아갈 수 있는 상태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계시면 좋은 것이지만 하지만 내 스스로 살아갈 수는 있는 상태입니까?” 왜 여러분이 하나님을 믿는데도 행복이 왔다갔다하는 줄 아시겠지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이 계셔서 나와 함께 하셔서 좋기는 한데, 굳이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아도 살 수는 있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한 순간도 하나님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상태가 되어야 진정한 행복, 지속되는 행복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될 때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것은 바로 “천국”을 소유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복은 현재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지금 하나님의 통치 안에서 내 마음이 천국을 누리고, 내세에 천국 시민으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8:1~4를 보면 오늘 말씀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예수님께서는 우리 마음이 어린 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천국에 갈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결단코”라는 강조어까지 사용하시면서 이 구절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이 구절이 얼마나 중요한 구절입니까? 이 구절에서 어린 아이의 어떤 면을 부각시킨 것이지요? 바로 부모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면입니다. 어린 아이는 엄마, 아빠가 없이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엄마, 아빠가 없으면 당장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배가 고파도 웁니다. 배가 너무 불러도 웁니다. 졸려도 웁니다. 운다는 것은 엄마, 아빠를 찾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으니까 부모님이 나 좀 도와달라는 것입니다.

저는 어린 시절에 정말 어머니만 졸졸 따라 다녔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에 저희 집은 할머니와 같이 살았는데, 할머니는 전통적인 분으로서 굉장히 무서운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주방에 들어갈 때도 저는 어머니 치마 붙잡고 다녔고, 심지어 화장실 갈 때도 치마 붙들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할머니께 많이 혼났다고 합니다. 그 때는 어머니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만 붙들고 살았던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혼자 힘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극빈자의 상태와 오늘 본문에서 나온 어린아이의 상태는 같은 것입니다. 우리의 부모님 되신 하나님 없이는 못 사는 존재가 되어야 진정으로 행복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럼,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어떤 신앙생활을 하며 살아가야 합니까?

첫째, 하나님 앞에 내가 가진 그 한 가지를 내려놓고 마음을 낮추며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는 첫째도 겸손, 둘째도 겸손, 셋째도 겸손, 넷째도 겸손해야 합니다. 때때로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하지요? 무릎 꿇고 기도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겸손한 모습을 하나님께 보여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절대 높아지려고 하지 마십시오. 철저하게 갈망하는 낮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우리는 사실 다 교만합니다. 한 명도 교만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교만은 선악과를 따 먹은 원죄 이후에 우리의 본성에 자리 잡은 무서운 본성입니다. 그런데 왜 교만한지를 잘 분석해보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한 가지 때문에 교만해지는 것을 발견합니다. 열 가지, 스무 가지 때문에 교만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가진 단 한 가지 때문에 교만한 것입니다. 돈 많은 사람은 그 돈 하나 가지고 교만해집니다. 학벌 좋은 사람은 다른 것 다 없어도 그 학벌 하나 가지고 자랑하고 교만해집니다. 외모가 좋은 사람은 그 외모 하나 가지고 마음이 높아지고 자랑합니다.

누구나 가진 것 하나는 다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교만해지는 것입니다. 가지고 있는 그 한 가지에 집중하다보니 마음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신이 가지고 있는 그 한 가지 때문에 은연 중에 마음이 높아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 믿고 여러분이 해야 할 제일 중요한 과제 중에 하나는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그 한 가지를 내려놓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그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그것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마음을 낮추십시오. 하나님 앞에 마음을 낮춘 사람은 자동으로 사람 앞에 낮추게 되어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위로는 하나님으로, 수평적으로는 사람으로 연결됩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동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마음을 낮춘 사람은 자동으로 사람에게 마음을 낮추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에게 높아지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아직 낮춰지지 못했구나!” 라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사람 앞에 절대 높아지지 마시고, 마음을 낮추십시오.

둘째, 하나님을 생각하며 힘을 내고 살아가야 합니다.

제가 믿음을 가장 쉽게 설명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생각나면 힘이 나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는 대상을 떠올리면 힘이 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떠올리면 힘이 납니까? 믿음과 힘은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만약 누구를 생각하면 짜증나고 힘들면 그 대상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여러분이 하나님을 떠올리면 어떻습니까? 힘이 납니까? 열정이 솟아납니까? 하나님을 만나러 예배 나올 때 힘이 나고 기대가 있고 소망이 생깁니까? 하나님을 생각해도 별 반응이 없고 힘도 안 나면 지금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 나오는데 아무 반응이 없거나 형식적으로 느낀다면 지금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믿는 자는 하나님을 생각하면 힘이 나야 합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 것입니다.

느헤미아 6:10에 보면,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고 나옵니다.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힘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생각하면 힘이 나야 합니다. 신앙의 성숙은 하나님을 생각할 때 힘이 나는 정도입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면 힘이 나요? 그러면 지금 하나님을 잘 믿는 것입니다.

다윗은 골리앗과 싸울 때 사무엘상 17:45에서 다음과 같은 멋진 고백을 합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칼과 창과 단창은 세상의 힘입니다. 그러나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이 우리의 유일한 힘인 것입니다. 사도행전 3장에서 베드로와 요한도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는 지체장애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은과 금은 세상적인 관점에서 보면 힘이지요. 그래서 그 힘을 가지려 하지요. 그러나 믿는 자의 궁극적인 힘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혹 여러분은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있어도 칼과 단창이 있어야 하겠네. 나사렛 예수의 이름은 알겠지만 그래도 은과 금 있어야 하겠네.” 라고 노래하며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반대로 살고 있으니까 여러분의 삶에서 진짜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고, 기적이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 빼고, 여러분이 의지하고 믿고 있는 대상의 특징은 무엇인 줄 아세요? 그 답은 다 변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의지하고 있는 사람들이요? 다 변합니다. 한 순간에 변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여기 모여 있는 모든 분들은 변하지 않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 의지하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그린억새(친절)_양주천일홍축제

김성중 목사

-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

- 기독교교육리더십연구소 소장

- 전국청소년수련회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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