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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sage] 역설의 신앙

작성자
기독교교육리더십연구소
작성일
2024-03-14 15:06
조회
9

메신저. 김성중 목사

고린도전서 4장9-13절

역설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역설은 한 마디로 논리대로 진행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하면 이렇게 되어야 하는데...” 반대 결과가 나오는 것입니다. 제가 역설이라는 주제를 수학으로 표기하면 1 더하기 1은 2가 되어야 하는데, 1 더하기 1은 -1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반대 결과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기독교 신앙은 역설에 의해서 진행된다는 것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역설이 요한복음 12장24절입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죽으면 죽은 것이지요.. 완전한 생명의 끝남이지요...그런데 죽으면 한 알의 열매를 맺는 것도 아닙니다. 많은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완전 역설이지요..

 

이렇게 하면 이런 결과가 나와야 하는데, 완전 반대의 결과가 나오니 말입니다.

 

이에 비슷한 비유로 씨 뿌리는 비유...좋은 땅에 씨가 뿌려지면, 좋은 땅에 씨가 떨어져 죽으면 30배, 60배, 100배의 열매가 맺혀지는 것입니다.

 

말라기 4장10절을 보면.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려 보십시오. 헌금 해 보세요. 인간적인 논리에 의하면 내 지갑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결과는 하나님께서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전에 학창시절에 불렀던 찬양의 가사가 떠오릅니다.

 

“사랑은 참으로 버리는 것 버리는 것, 이상하다 동전 한 닢 움켜잡으면 없어지고, 쓰고 빌려주면 풍성해져 땅 위에 가득하네...”

 

이것이 기독교의 역설의 신앙입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들을 보아도 이 역설의 진리에 적용됩니다.

 

고린도전서 1장26-29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은 이상하게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가진 것도 없고, 학식도 없고, 세상적으로 볼 때 인정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는 많이 배우지 못한 사람이었지요..예수님의 제자였던 마태는 민족의 배신자라고 욕을 먹던 세리였지요. 셀롯이라 하는 시몬이라는 사람은 심지어 어떤 사람인줄 아십니까? 일명 열심당원으로서 로마에 무력으로 대항했던 무서운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자들을 택하셔서 큰일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신과 선교 동역자인 소스데네를 이렇게 말합니다. 9절에 보면,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너무나 눈물나는 구절 아닙니까? “끄뜨머리” 라는 단어는 가장 보잘 것 없고, 아무 것도 없고, 완전히 극빈 상태가 되는 비천한 처지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전했던 복음 전도자들, 사도들은 어떤 삶을 살았습니까? 도망다니며 살았습니다. 만약 도망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다가 로마에 의해 잡히면, 체포당해서 대다수 원형 경기장에서 사자 밥으로 내던져졌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수많은 관중들이 구경하는 가운데 맹수와 사투를 벌이다 죽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10절에서는 “끄뜨머리”가 된 삶을 구체적으로 언급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으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나 우리는 비천하며,,,”

 

끄뜨머리의 삶을 대변해주는 동사는 “어리석다” “약하다” “비천하다”입니다.

 

자신들은 배운 것도 없고, 세상 지혜가 없어서 어리석고, 가진 것도 없이 약하고, 비천하다는 것입니다. 세상적으로 볼 때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11절에 보면, 바로 이 시각까지,,즉, 지금 고린도전서를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까지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매맞으며 쉴 때도 없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자비량 선교이기 때문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하는 일은 텐트 만드는 일을 했습니다. 거기에서 번 돈을 다 선교비에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음으로 유대인에게도 왕따였고, 로마인들에게도 핍박을 받았습니다. 비방을 받았습니다. 믿을 만한 사람 한 사람도 없는 고난의 삶을 산 것입니다.

 

그래서 13절에 보면, 자신들의 삶을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라고까지 표현합니다. “더러운 것”은 오물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찌꺼기”는 때를 의미합니다.

 

그야말로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은 이렇게 보잘 것 없는 존재들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세상의 관점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은 반대입니다.

 

이런 자들이 되어야 하나님께서 쓰시는 것입니다. 세상적으로는 가장 비천하고 초라한 사람이지만 예수님께서 인정하시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는 진짜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16절에 보면 고린도교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그래서 이 말씀도 역설이 작용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역설”

 

이 역설을 살펴보면서 발견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역설에는 믿음이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세상적 관점에서는 논리 불가, 논리체계의 파괴이지만, 하나님 측면에서는 이것이 순환 논리라는 것입니다.

 

역설이 왜 나왔어요? 하나님의 관점과 인간의 관점이 맞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설명하다 보니까 역설이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관점과 인간의 관점을 연결하기 위해서는, 즉, 역설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바로 바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적으로 보았을 때는 저주고 고난이고, 희생이지만 하나님을 믿음으로 이것이 복이 되고, 은혜가 되고,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하나님의 관점과 인간의 관점은 어찌 보면, 반대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신앙생활은 어려운 것이고, 이 테스트에 통과해야 진짜 신앙의 세계가 열리는 것입니다.

 

역설의 관점에서 신앙을 이해하고,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시각을 인정하고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망합니다. 아멘.

김성중 목사

-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

- 기독교교육리더십연구소 소장

- 전국청소년수련회 강사

[출처] [Message] 역설의 신앙|작성자 꿈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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