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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sage] 신앙실천시리즈 1 _ 평안

작성자
기독교교육리더십연구소
작성일
2024-03-14 14:39
조회
7

메신저. 김성중 목사

빌립보서 4장 6~7, 11~13절

오늘 본문이 담겨있는 빌립보서는 옥중서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바울이 옥에 갇히자 빌립보 교인들은 힘을 잃게 되었습니다. 낙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편지를 보내서 낙담하지 말고, 기뻐할 것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자신이 잡혀서 감옥에 있으면서 여기 있는 죄수들, 간수장을 전도했고, 또한 바울이 감옥에 갇힌 것을 보자 복음 전도자들이 담대함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우울해하지 말고, 슬퍼하지도 말고, 기뻐할 것을 권고합니다.

빌립보서 4:4에 보면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여러분, 이 선포는 가장 편한 대궐 같은 집에서 한 선포가 아닙니다. 사람이 살 수 없었던 감옥에서 선포한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데살로니가 5:16~18절을 보면,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나옵니다. 이 말을 누가 했습니까? 바울이 했습니다. 즉, 바울은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기쁨, 기도, 감사가 그의 삶의 모토, 좌우명이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도 바울의 삶의 모토를 바탕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언제 기도합니까? 종종 힘들 때, 외로울 때, 괴로울 때, 어려운 가운데 있을 때 기도합니다. 좋을 때, 평안할 때 기도하는 사람은 대단한 믿음의 소유자입니다.

어려운 일이 있어서 기도할 때 우리 머리 속은 무엇으로 가득 찹니까? 네. 염려로 가득 찹니다. 원망으로 가득 찹니다. 불평으로 가득 찹니다. 기도를 해도 불평 섞인 한탄조의 기도, 하나님을 향한 원망의 기도, 낙담의 기도를 합니다. 물론 이 기도도 소중하고, 기도 안 하는 것보다는 훨씬 좋은 모습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기도하면 안 된다는 것을 말씀해 줍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큰 대비가 나옵니다. 그것은 염려와 기도, 간구입니다. 인간의 본성은 힘든 일이 오고, 어려운 일이 닥치면 염려하게 되고, 고민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설은 그 본성을 극복하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간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염려하고, 고민하면 당연히 불평하게 되지만, 불평하지 말고, 불평의 반대인 기쁨이 전제되어 있는 감사를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신앙생활하기가 왜 어려운 지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기 때문입니다. 나는 불평하고 원망하고 싶은데 하나님께서는 감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슬퍼하고 싶은데 하나님께서는 기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미워하고 복수하고 싶은데, 하나님은 용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내 맘대로 살고 싶은데,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대로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다 인간의 본성과는 반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정도 신앙의 반열에 오른 사람은 마음속에서 인간 본성과의 싸움을 해 나갑니다.

기도의 사람 다니엘도 어떤 상황, 심지어 자신이 사자굴 속에 들어갈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하나님께 감사기도 합니다. 다니엘 6장 10절의 말씀입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그러면 어떻게 염려하지 않고 감사의 기도를 할 수 있습니까?

그 답은 바울처럼 감사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감사의 삶을 살아야 감사의 기도를 할 수 있지, 불평과 불만족의 삶을 사는데, 감사의 기도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언행일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기도에 대해 가르쳐주고 나서 11절부터 13절까지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언급합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그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당대 최고의 석학이었던 가말리엘 문하에서 공부한 최고의 학벌을 가지고 있었고, 집안도 유대인이지만, 로마시민권을 가질 정도로 부유하고, 파워가 있었습니다. 엘리트 생활도 경험했습니다. 예수님 만난 후에 여러 곳에 다니면서 교회를 개척하면서 최고의 복음전도자, 교회지도자라는 칭호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다가 여러 고난을 받은 자입니다. 고후 11에 보면,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 옥에 갇히기도 많이 했고, 수없이 맞고 여러분 죽을 뻔도 하였고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기도 했습니다.

당시 법에는 사람이 40대 맞으면 죽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사십에 하나 감한 삼십구 대를 맞았다는 것은 죽도록 맞았다는 것입니다.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주일을 깊은 바다에서 지냈고, 강의 위험, 강도의 위험, 동족의 위험, 이방인의 위험, 바다의 위험, 거짓 형제의 위험을 당했고,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고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헐벗는 삶을 경험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다양한 삶의 상황에 맞닥뜨리면서 깨달은 결과가 무엇입니까? 자족하기를 배웠다는 것입니다. 어느 상황에도 견딜 수 있는 선인장과 같은 강인함을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13절의 말씀의 내용입니다.

“내가 돈도 있어 보았고, 최고의 학벌도 가져 보았고, 반면에 가장 가난도 해 보았고, 지금과 같이 감옥에도 가 보았고, 모든 것을 경험해 본 결과 배고픔과 풍부, 기쁨, 평안, 만족. 반대로 궁핍, 가난, 어려움, 외로움, 고독 모든 삶의 환경에 대처하는 비법을 배웠습니다. 그 결과 내게 능력 주시는 하나님 안에서 내가 모든 상황과 환경을 극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자족의 원리입니다. 자족은 그냥 한탄조의 수용이 아닙니다. 자족은 감사함으로 삶의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와 같은 감사의 삶을 바탕으로 감사의 기도를 하면, 어떤 결과가 올까요?

7절에 나와 있습니다. “모든 지각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강이 예수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영어 성경을 보면 이해가 빠릅니다. ”transcend all understanding"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머리로는 이해안되는 생각, 해석을 뛰어넘는 무한하신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를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불평과 원망, 슬픔이 아닌, 하나님의 참된 평강, 기쁨, 위로가 우리에게 넘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문제해결입니다. 참된 기도의 응답입니다. 이제 더이상 그 문제 때문에 괴로워하거나 염려하거나 고통당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중보자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위로와 평안과 기쁨이 넘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기도하시겠습니까? 불평하고 원망하겠습니까? 아니면 감사함으로 기도하겠습니까? 그것은 여러분에게 달려있습니다. 그리고 감사의 기도의 결과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주시는 평안과 기도응답입니다.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며 하나님의 역설인 감사의 기도를 통해 기도응답을 받고, 마음이 행복하고, 평안하고, 기쁨 속에 살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망합니다.

김성중 목사

-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

- 기독교교육리더십연구소 소장

- 전국청소년수련회 강사

[출처] [Message] 신앙실천시리즈 1 _ 평안|작성자 꿈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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