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신저. 김성중 목사

요나서 4장 1~11절

오늘 본문의 요나의 모습이 나의 모습은 아닌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도 내 뜻과 내 판단, 내 상황에 맞으면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렇지 않으면 신뢰도가 떨어지지는 않습니까? 그리고, 갑자기 고난이 오거나 해석하지 못할 일이 다가오면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줄어들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상황과 여건과 나의 판단과 주변 환경과 관계없이, 어떠한 일이 다가온다 할지라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럼, 변함없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첫째,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알기는 알았습니다. 그러나 정확히는 알지 못했습니다. 2절에 보면, 요나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런대로 알고 있습니다.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이 구절은 요나가 말한 것이 아니라 출애굽기 34장 6~7절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요나는 자신이 잘못했을 때, 하나님이 용서해주시고 물고기 뱃속에서 살리신 것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이 은혜로우신 분이신 줄,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분이심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 말씀이 자신을 포함한 유대인들에게만 해당되는 줄 알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유대인의 하나님뿐만 아니라,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는데 그것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유대인의 하나님으로 국한되는 분이 아니라, 전 세계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온 만물을 만드는 우주의 하나님이신 것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심지어 마태복음 5장 45절을 보면, 하나님은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시는 누구에게나 자비를 베푸시는 분이심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이 누구신지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늘어가야 합니다.

 

 

왜 앎, 지식이 중요합니까? 바로 안 만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랑한 만큼 아는 것도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사랑에 있어서 감정적 요소를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안 만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알게 된 만큼 믿고, 신뢰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지식과 사랑과 믿음은 함께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4장 13절에서 바울은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의 사도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위해 기도할 때 이것을 위해 기도한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17절에 나오는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해 달라”는 기도였습니다.

 

 

그럼, 하나님을 어떻게 하면 정확히 알 수 있을까요? 에베소서 1장 17절을 잘 주목하면 해답이 나옵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이 누구이십니까? 바로 성령이십니다. 성령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정확하게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2장 10절~11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정말 놀라운 말씀 아닙니까? 하나님의 영 성령만이 하나님의 지혜를 알 수 있고, 하나님의 깊은 뜻을 통달하시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에서도 예수님께서는 바울과 비슷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게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역사가 일어나면 하나님을 잘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사모하고 구하십시오. 누가복음 11장 13절에서 예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둘째, 내 감정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나는 하나님께 자신의 감정을 너무나 쉽게 표출합니다. 1절을 보면, “심히 노했다”고 나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4절에서 요나에게 말씀하십니다. “너의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 성내지 말아라.” 또 6절에는 박 넝쿨 때문에 “심히 기뻐하였다”고 나옵니다. 감정의 기복이 너무 심합니다. 그러다가 박 넝쿨이 사라지자 또 불평하고 분내며 “죽는 것이 낫다”고 말합니다.

 

 

사람은 감정의 존재입니다. 하지만, 감정 따라 살면, 그 신앙은 up되었다가 down되고, 또 up되었다가 down되는 왔다갔다 신앙, 평안함과 지속성이 없는 신앙이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의 기분과 감정 따라 하나님을 신뢰했다가 안 했다가 할 위험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에서는 신앙성숙도 없고, 변함없이 하나님을 신뢰할 수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서 5장 24절에서 이렇게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아멘.

 

 

자신의 감정을 극복해내는 사람들이 되기기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가장 믿음직하신 분, 가장 정의롭고, 공정하시고, 성실하신 분이시라는 뜻입니다. 이 믿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변함없이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요나는 계속적으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니느웨가 망해야 한다는 미련을 버리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가장 옳으셔, 하나님의 뜻이 가장 정의롭고 완벽하셔. 하나님은 가장 신실하신 분이시니까.”라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믿음이 좀 부족했습니다. 그러니까 불평과 불만이 가득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한 비슷한 내용이 하박국서입니다. 하박국은 하나님께 대한 질문과 답변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박국은 이스라엘에 악이 판을 치는 것을 못견디면서 하나님께 질문을 던집니다. 그러니까 바벨론을 보내서 이스라엘을 벌 내리시겠다고 답변하십니다. 그러니까 하박국은 “이스라엘보다도 비교도 할 수 없이 훨씬 더 나쁜 바벨론을 통해 우리 민족에게 벌을 내리시는 것이 정당합니까? 정당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불공정한 처사입니다.”라고 하나님께 불평의 질문을 던집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하박국에게 답변하신 내용이 바로 하박국서 2장 4절입니다.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의인은 하나님을 향한 신실함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석하지 못할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의 머리로 이해 못할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 때 우리가 가져야 할 것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믿음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계획하시는 것이 가장 옳아! 하나님이 가장 완벽하고, 가장 정당하셔,,,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진리인 것이야.”

 

 

이런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언제나 변함없이 하나님을 신뢰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부르는 찬양 “오직 믿음으로”의 가사가 여러분의 삶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 흔들리고, 사람들은 변하여도 나는 주를 섬기리. 주님의 사랑은 영원히 변하지 않네 나는 주를 신뢰해. 오직 믿음으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아멘.

김성중 목사

-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

- 기독교교육리더십연구소 소장

- 전국청소년수련회 강사

[출처] [Message] 하나님을 신뢰하는 비결 2|작성자 꿈틀이